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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5월에 떠난 이들을 기리며



5월22일자 한겨레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칼럼입니다.
저는 파리한 책벌레라, 생생하고 감동적인 글은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5월에 떠난 이들을 추모하렵니다.







레퀴엠, 5월에 떠난 이들을 기리며



죽음을 맞아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차피 죽을 텐데, 어째서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걸까요? “헛되고 헛되다” ― 라틴어 ‘바니타스 바니타툼(vanitas vanitatum)’을 옮긴 말이지요.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서>)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교훈을 그려내기 위해, 네덜란드 화가들은 ‘바니타스 정물’이란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생각해냈어요. 꽃과 유리그릇, 비눗방울과 인간의 공통점은 뭘까요? 꽃은 시들고 유리는 깨지고 인간은 죽게 마련, 즉 이들 모두 덧없는 존재라나요. 그러므로 이런 정물화를 보시거들랑, 사진 뺨치는 그림솜씨에만 감탄마시고, 우리 한갓된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그날을 생각해 달래요. 




스바냐라는 예언자는 무서운 말을 했더군요. “그날은 신의 분노가 터지는 날, …나팔 소리 울리며 함성이 터지는 날이다. …신의 분노가 타오르는 날, 온 세상은 활활 타버리리라.” 이 끔찍한 상상은 훗날 <레퀴엠>의 가사가 됐지요. 모차르트의 <디에스 이레(dies irae)>는 천둥번개와 같은 아찔한 가락으로 세계의 종말을 그려냈어요. “진노의 날, 바로 그날, 세상이 재가 되어 사라질 그날.” 베르디는 귀를 찢는 금관 합주에 천사들의 나팔 소리 <투바 미룸(tuba mirum)>을 담았고요. “나팔은 놀라운 소리를 흩뿌리며….” 




에라스뮈스는 “인간은 물거품(호모 불라, homo bulla)”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소개합니다. “인생살이보다 덧없는 것도 없고, 그보다 공허한 것도 없다.” 미켈란젤로는 벽화 <최후의 심판> 한복판에 세상 끝나는 날 나팔 부는 천사들을 그려 넣었는데요, 그들의 나팔 주둥이에서 비눗방울이 나오도록 바꾸어 봤습니다. 라틴어 ‘불라(bulla)’는 물거품이라는 뜻도 있고, 비눗방울이라는 뜻도 있으니까요. 한편 그림 왼쪽 아래 비눗방울을 부는 꼬마는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에서 데려온 친구이지요. 유리병에 담긴 꽃과 비눗방울, 깃털 등이 바니타스 정물의 전형적 도상입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풀과 나뭇잎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을 지으면서, 전통적인 레퀴엠 구성을 따르지 않고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에서 직접 가사를 추렸어요. 두 번째 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그러나 인생이 헛되기만 할까요? 내 생명이 다하더라도, 나와 같은 뜻을 계속 이어나갈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삶은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이렇게 읊었죠. “인간의 세대란 나뭇잎과도 같아, 바람에 한 세대의 잎이 지더라도, 봄이 오면 새로운 세대가 나무에 움트듯이.” 



5월.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이 글을 씁니다. “5월은 한국에만 있지 않다…. 1980년 5월이 광주 것이라면, 1984년 5월은 필리핀 몫이다. 그리고 1990년 랑군, 1992년 방콕, 1998년 자카르타처럼 아시아는 몫몫이 5월을 불렀다”(정문태). 5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렇게 끝나죠.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30년 전 도청을 사수하던 젊은 넋들은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부엉이 바위에 올라 고향 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그이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by 김태 | 2010/05/23 03:21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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