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글루스 | 로그인  


태그 : 3.1절

3.1절특집...까지는 아니고, <최후의 분대장>을 다시 읽다가


3.1절 특집까지는 아니지만 ... 3.1절을 맞아 <최후의 분대장>을 오랜만에 들춰보았지요.
김구와 김원봉 등에 대한 회고가 눈길을 끄네요. 백범은 의외로 귀여운 스타일이었던 것 같고
약산은 살벌할 것만 같지만 의외로 시골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나 봅니다.

 최후의 분대장 : 김학철 자서전. 문학과 지성사, 1995.


1

김학철 자서전.

저자는 어려서 장난꾸러기였어요. '결기'있는 청년으로 자랍니다. 비뚤어진 시대에 '결기'
있는 청년이 대체로 그렇듯, 사회정의를 되찾아보겠다고 1930년대에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정의감 투철한 문학소년이, 윤봉길 의사의 소문만 듣고 피가 끓어,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중국에 넘어간 겁니다. 

처음에는 '결기'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상교육을 받은 후 투철한 맑시스트가 되어
조선의용대에 입대합니다. 이른바 연안파 사회주의자가 된 거죠. 1941년 일본군과 교전중
총을 맞고 체포됩니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다리 한쪽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몸바쳐 독립운동을 했으니, 좀 잘 살아도 좋으련만,
해방 후에는 동료들이 걸은 길 그대로, 그 역시 수난을 겪습니다.
연안파는 대체로 결국 한국전쟁 때 총알받이가 되거나 김일성한테 숙청당하잖아요.
다만 저자는 한쪽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전장으로 가지 않고 후방에서 김일성에게
'독립투사'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잃는 걸 지켜보다가, 숙청당하기 직전에 주위의 
도움으로 중국에 망명합니다. (저자는 그래서 김일성이라면 이를 갑니다.)

중국에서는 잘 살았는가. 순탄치 않습니다. '결기'있는 사람은 독재자와 살기 힘들죠.
문혁 때 잘못 걸려 감옥에서 10년을 고생을 하고 나옵니다. 날마다 두들겨 맞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투철한 맑시스트지만, 기개와 긍지가 높은 사람입니다. 말이 안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반드시 토를 다는 성격입니다. 해방 후 서울에서 박헌영한테 호통치며 들이대 문제가 되기도 하고
당연히 평양에서 김일성과도 잘 지내지 못합니다. 김일성을 '희대의 살인마'라 부르는 데에 주저
하지 않지요. 해방투쟁에 함께 했던 동지들을 모두 김일성한테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렇다고 중국당국하고 좋았던 것도 아니라서, 문혁 때 된통 당하고는 모택동과 강청이라면
넌더리를 냅니다. 휴. 

기개있는 자는 살아남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20세기의 동아시아에서.



2

저자의 백범 회고가 눈길을 끕니다. 독립운동할 때 좌우대립이 심하고 그랬던 것처럼 얘기되지만
'필드'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요. 투철한 맑시스트였던 저자는 김구와 김규식, 그리고 
김원봉 등에 대해 이렇게 회고합니다. 인간적인 모습들이 재밌기도 하고, 좀 뭉클하기도 합니다.
(장기려 박사 정말 훌륭한 인격자라고 극찬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136쪽) 김구 선생은 액내(額內)가 아니었으나 이따금 뵙게 되는데 대면해서는 다들 '선생님' '선생님'하고 소인을 개어 올리지만 에서는 '노완고(老頑固)'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리고 김규식 선생은 '미주(美州) 아저씨'라고들 불렀다. 내 짐작으로는 '엉클 샘 Uncle Sam'에서 따다가 친근스레 우리말로 옮긴 게 아닌가 싶었다. (...) 

136-7쪽) 김원봉 선생은 의열단의 의백(즉 단장)을 지낸 분이라서 굉장히 무섭게 생긴 줄 알았었는데 막상 대해보니 시골 중학교의 교장 선생님 같이 부드러운지라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 혹시 이거 가짜 아냐?
이 가짜 아닌 진짜 김원봉 선생도 해방 후...(북에서) 반혁명 간첩 등으로 몰려 옥중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178쪽) 김원봉 선생은 변재(말재주)가 없는 분이라 말끝마다 '말이야' 하나씩이 붙는 까닭에 우리는 그 수를 세어두었다가 나중에 "오늘 '말이야'는 모두 서른세 번." "틀렸어. 모두 서른네 번." 서로 제가 맞다고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분은 타고난 카리스마로 해 우리들의 마음을 끌고 또 자연스레 복종을 하게끔 만들었다. (...)

179쪽) 김구 선생을 비록 '노완고'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분을 여간만 존경하지 않았다. 그분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를 초들 때마다 중국어를 그대로 옮겨서 '라사복(羅斯福)'이라고 하는 따위도 우리는 다 애교로 받아들였었다.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킥킥거리긴 했지만서도.

180쪽) 우리는 이청천 선생도 역시 대선배로 존경을 했었다. 그분이 비록 총 한 방으로 왜병 일곱 놈을 쏴 눕혔다는 따위의 허풍을 치기는 했지만서도. 일곱 놈이 북어쾌처럼 가지런히 너부러지더라는 것이다. 

<수호지>나 <장길산>을 읽는 것 같은 입담이 느껴집니다. 사실 수호지나 장길산의 주인공들도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결기'였으니까요.

...<수호지>와 비슷한 점이 또 있네요. 108 호걸들이 다 어이없게 스러져가는 장면을 읽으며 무지
하게 슬펐는데(어릴 땐 분해서 울기도 했습니다, 저도 결기가 조금은 있어서),<최후의 분대장>도
뒤쪽에 그렇습니다. 그나마 <수호지>의 주인공들은 허구적인물이고 살인강도들이지만, <최후의
분대장>에 나오는 실제 활동가들의 비참한 최후는 마음을 후벼파더군요.


3

실천 속에서의 화합.

필드에 직접 있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이른바 '독립운동'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학철님처럼 필드에서 직접 뛰었던 젊은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좌파냐 우파냐보다는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옛날에 학생회운동이나 지역
운동도, 필드에서 하던 선배들은 NL이냐 PD냐 하는 문제를 그렇게 크게 느끼지만은 않았나 보더라고요.
당장 눈 앞에 일본군 총알 날아다니고, 또 당장 눈 앞에 백골단 뛰어다니면, 지금 실천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구체적인 '교리논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화합은 관조가 아니라 실천 속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일 겁니다.



4

화합... 아무리 그래도 이번 3.1절, 이명박씨의 "중도실용" 화합 드립은 너무 심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3.1 운동의 대승적 화합정신을 계승, 승화하자며 국민통합을 역설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3.1 운동 정신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지양하(...)는 중도실용주의 정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음... 저분은 "이렇게 하면 지구인은 화를 낼 것이다"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 같아요.
외계인 아닐까요? 아니면 정말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사이코패스인 걸까요?




참고로, 3.1일자 경향신문 만평. 엄청 웃었는데, 마음 한켠이 짠하네요 :
 

요즘 뉴라이트분들이 '국가정체성'운운하던데... 그런데 임시정부와 4.19는 헌법'전문'에 명시된 '국가정체성'입니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은 다름아닌 뉴라이트라 하겠지요. 뭐 저는 국가정체성이란 용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저 용어 쓰는 분들이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도 있기를 희망합니다. 헛된 희망이려나요. 쩝.

by 김태 | 2010/03/02 05:17 | 읽는책 | 트랙백 | 덧글(1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