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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3 에라스무스(10) - 죽은 자에게서 이문을 뜯다 - 2008년 공황 [6]




# by | 2008/12/29 08:51 | 글그림 | 트랙백 | 덧글(6)
죽은 자에게 세금을 물리다
‘죽은 자에게 세금을 물리다(a mortuo tributum exigere, 아 모르투오 트리부툼 엑시게레)’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서까지 돈을 받아 내다니, 참 지독하지요. 혹시 이 말은 부자들에게 이른바 ‘세금 폭탄’을 물리는 정부를 비난하는 말일까요?

에라스무스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세금’은 정부가 거두는 돈을 뜻하지만, 고전에 정통한 에라스무스는 이 격언을 훨씬 넓은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죽은 자에게서 이문을 챙긴다’고 말이죠. 조금 골치 아픈 이야기지만, 그는 ‘조세’(희랍어로 phoros, 포로스)와 ‘이자·이윤’(라틴어 fenus, 페누스)이 한 뿌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가 보기에, 첫째 이자놀이에 빠진 대금업자, 둘째 상권을 독점하는 장사꾼, 셋째 특권계층인 귀족 제후, 그리고 끝으로 부패한 성직자, 이 네 가지 집단이야말로 “죽은 자에게조차 세금을 뜯을” 정도로 “창피한 줄 모르고 제 이득만 취하는” 사람들이라는군요. 그는 “소유에 대한 욕구가 팽배하여” 닥치는 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현실을 개탄합니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과연 개인의 이기심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켜준다는 ‘보이지 않는 손’은 늘 제대로 기능하는 걸까요.

에라스무스의 조국 네덜란드는 17세기에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넘치는 돈이 미술계로 흘러들어가 화가 렘브란트는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원형이 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도 이때 그린 집단 초상화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기 시장에 몰렸는데, 이때 투기의 대상이, 글쎄, 튤립의 알뿌리(구근)였다나요. 공교롭게도 에라스무스가 죽고 100년이 지난 1636년, 튤립 알뿌리 값은 고점을 찍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집을 저당 잡혀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요. 그 다음엔? 튤립 값이 폭락하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붕괴했고 사람들은 파산했습니다. 수입이 끊긴 렘브란트 역시 서서히 몰락하여 비참한 가난 속에서 죽었다지요.

그런데 공황을 겪으며 모두가 손해만 보는 건 아닙니다. 돈이 급한 이는 가진 것을 내다 팔고 여윳돈이 있는 이는 헐값에 사 모읍니다. 부자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은 자에게서 이문을 챙기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지요.

그런데 이럴 때 굳이 부자의 세금을 줄이고 가난한 이웃의 부담을 높여야 할까요? 몇몇 부자들만 무는 세금은 ‘세금 폭탄’이라며 깎아주자던 분들이, 평범한 사람이 물 세금은 국가 재정을 위해 손대지 않겠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부가가치세 따위에 ‘역진세’의 성격이 있다는 것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나요?) 게다가 이제 곧 ‘고통분담’이라며 힘없는 이웃을 고통으로 내모는 때가 닥치겠지요.
옛날에 에라스무스는 말했습니다. “결국 제후들은 이에 상응하는 증오를 얻게 되리라.” 지금의 이 깊은 절망과 설움 속에서 행여 증오가 싹틀까봐 나는 정말 두렵습니다.
# by | 2008/11/03 09:36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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