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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인간에대한예의

자기반성 : MB를 싫어하는 내 입장은 지지받을 수 있지만...



         ‘20대에 무얼 했더라?’ 그나마 20대에 기억나는 건 몇 가지 ‘훈련’을 받은 것 말곤 없습니다(공익 주제에 예비군훈련도 받았으니까요). 딴에는 어느 정도 ‘인문학적 훈련’도 받은 셈입니다. 인문대에서 학부를 나와 인문학과 관련된 일을 했고 이제 다시 인문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인문학적 훈련 가운데 핵심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겠지요. “혹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해 봅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그래서 숫제 틈날 때마다 나 자신을 적대적으로 공격해 보지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내’가 틀리다는 가정을 하고 여러 가지로 비판하는 ‘훈련’을 하는 편입니다.

         이번 주에는 평소보다 ‘반성’의 기회가 많았습니다. 마감이 밀려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책상머리에 앉아 을 샜거든요(역시 동틀 녘에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법이지요). 뭐 늘 그렇지만, ‘스스로 참괴하니 누구를 탓할소냐’더군요. 이성에 맞는 당당한 삶을 살려면 아직도 너무나 멀었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쟁점에 있어서도 ‘반성’했습니다. “혹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평소 내가 반대하던 입장에 서서, 나 자신을 공격해봤습니다. ‘내가 틀리고 MB가 맞다면?’ 어제 저녁엔 ‘합리적 보수’의 입장을 견지하고자 노력하는 옛친구를 만나 늦게까지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요(한국에서 합리적 보수의 입장을 지키려고 애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저와는 입장이 다르지만, 그 지적인 노력과 성실성에 경의를 보낼 수밖에 없지요). 과연 MB를 공격하던 내 평소 입장은 이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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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표 : 아직까지는 괜찮더군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크건 작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MB를 지지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MB와 그 나팔수들은 (1) 기본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으며 (정합성이 전혀 없습니다) (2) 지켜야 할 룰을 (법이건 상식이건 도덕이건) 지키지 않으며 (3) 누구나 공유하는 가치들을 (입으로는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존중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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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이번 일주일 동안, 나 스스로의 문제점도 여럿 찾아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는 부분들”입니다. 앞으로의 숙제로 적어 둡니다.


         1. MB를 싫어하는 이유 : “MB를 싫어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다만 내가 MB를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비판할 부분이 있다.” 여러분은 MB를 왜 싫어하세요? 내가 MB 패거리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MB와 주변인물들이 너무 천박해서’라는 점이 있더라고요(사실 천박하긴 하죠). '여러가지로 MB 패거리가 싫지만, 무식하고 천박한 점이 특히 싫다'는 거죠.  전여옥과 변듣보 등 오크 군단이 그 대표적인 사례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천박하다’고 싫어하는 건 위험한 태도입니다. 물론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MB는 압도적으로 천박합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또는 그러니만큼 더군다나) ‘천박하다’는 명분으로 싫어하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반성, 또 반성.


         2. MB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 : MB 지지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아쉽습니다. 보통 그쪽 양반들이 싸가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키지 않는 쪽이 문제가 있는 것이지, 저쪽이 지키지 않는다고, 나 역시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예컨대 폭력 비폭력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저쪽이 때린다고 이쪽도 때리는 게 올바른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저쪽이 억지 피운다고 나 역시 억지 피워도 되는 건 아닌 거고요. MB 지지자들과 똑같아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지호나 전여옥이나 뉴라이트와 변듣보 따위 오크 족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꾸로 그들에 대한 예의를 나는 지켜야 합니다.(글쓰다 보니 열받네요. 헐! 어쩔 수 없죠.)


         가장 기본적인 예의는, 그들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는 겁니다. 지금 온갖 욕을 얻어 먹을 짓을 한다 하더라도, 평생 그러지는 않으리라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막말로, 내일 아침 갑자기 전여옥이 보수/진보를 떠나 위대한 인격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변화 가능성을 '인간에 대한 신뢰'로서 신뢰해야 합니다. (순수이론적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그들이 현재의 사상을 고수하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걸 믿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도, 믿어줘야 합니다.

         아, 솔까말, 심정적으로 무지하게 어려운 일입니다(토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명령이니 실천해야 하겠죠.


         3. 비난의 대상이 너무 좁다 : 문제는 MB 개인이 아닙니다. 박노자 선생의 글처럼,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는 지도층 전체의 문제도 있고 ("MB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8895), 우리 모두의 책임인 부분도 있습니다 ("대한민국형 '사회적 합의'"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9463). 그럼에도 자꾸 MB와 몇몇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게 되는 건, 나 자신의 지적인 게으름 때문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공부는 안 하고 그냥 눈에 띠는 몇몇만 욕을 하는 건 아닐지. 속이야 시원하겠죠.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닐 겁니다. 나의 의무를 다 하는 것도 아닐 거고요.


         4. 소수파의 가치에 주의를 더 기울일 것 : 나는 최근 10년간 한국사회에 큰 논쟁이 있었을 때마다 ( D-War와 MB 당선 때만 빼고^^ ) 지금까지 다수파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다수파의 입장에만 머무르는 것 아닐지 걱정입니다.

         물론 다수파의 입장이 대체로 맞습니다. 그걸 우리는 '상식'이라고 부릅니다. (MB 당선 때에도 다수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기뻐하지는 않았습니다. 투표율 보시면 아시다시피.) 그런데 너무 상식에만 머물러 있다는 건, 혹시 나 자신이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소심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 물론 닥치는 대로 욕먹고 돌아다니면서 기뻐하는 인간들도 있지요. 변듣보도 그렇고 이글루의 몇몇 뜨내기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치찬란한 입장들말고도 ) MB에 반대하면서도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지하는 가치가 올바르다면, 나는 소수파가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5. 종교의 문제 : 유신론자로서의 입장도 반성해 보았습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용인할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얻었습니다(http://kimtae.egloos.com/2313298에 링크된 글들이 그 문제에 대한 고민에 도움을 줬습니다). 이 부분도 사실 논의의 여지가 여전히 많은 부분이긴 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1) 기왕 유신론자를 하려거든 철저히 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이도 저도 아닙니다. 가톨릭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당연히 있죠), 가톨릭교회를 뛰쳐나가거나 반대로 교단 내부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해야 나는 내가 할 의무를 하는 것이겠죠.


         또한 (2) 나 자신의 종교에 대해 더 솔직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나의 종교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다른 종교보다 심한 경우도 많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두 번째 입장에 대해서는, 기우님의 비판도 있으셨고(http://kimtae.egloos.com/2324812에서 기우님의 비판에 대해 대체로 동의합니다), 또 최근 교황 아저씨도 말썽이 많으신 모양이니(다음 포스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kapow.egloos.com/1884303 사실은 이것보다 더 끔찍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서거에 묻혀 큰 뉴스가 안 됐는데, 홀로코스트에 대해 망언을 한 주교를 감싸다가 교황청이 통째로 날아갈 뻔한 사건이 있습니다.) ... 별도의 글을 써봐야겠습니다.



by 김태 | 2009/04/03 12:08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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