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글루스 | 로그인  


태그 : 에라스무스

카리브디스인가 스킬라인가? 선택에 대하여, 또...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7월31일자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글의 전문은 다음 링크를 클릭)

이글에서 두 개의 라틴어격언을 소개합니다.

1. 
..우선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 이럴 때 서양의 옛 지식인들은 “카리브디스를 피하여 스킬라에게 잡히다”(에비타타 카리브디 인 스킬람 인키디, evitata Charybdi in Scyllam incidi)라고 말했대요. 카리브디스와 스킬라는 둘 다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입니다. 스킬라는 한번에 여섯명의 뱃사람을 낚아채 잡아먹는 반면, 카리브디스는 소용돌이를 일으켜 모든 사람을 삼켜버린대요. 오디세우스는 고민 끝에 카리브디스를 피하여 스킬라에 가까이 배를 몰아갔다죠. 그의 판단으론 “여섯명을 잃는 것이 모두를 잃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어, “병마의 카리브디스를 피하는 대신 손실의 스킬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에라스뮈스는 말합니다. “재산과 생명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복구할 수 있는) 재산을 포기하는 쪽이 올바른 선택”이라나요.

2. 
..반면 나쁜 결과를 피하려다 오히려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기를 피하려다 불 속에 떨어지다”(푸뭄 푸기엔스 인 이그넴 인키디, fumum fugiens in ignem incidi)라는 말이 있대요..


그리고 동양의 격언도 언급합니다.

선택은 어렵습니다. 누구는 스킬라를 택해 손실을 줄이겠지만, 누구는 불구덩이에 빠져 고생하겠죠. 다만 선택을 해버린 이후에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옛 동양의 지혜에 따르면, 설령 마구간에서 말이 달아난대도 그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요.(새옹지마, 塞翁之馬) 무릇 세상일이란 ‘화가 복이 되기도 하니까요’.(전화위복, 轉禍爲福) 어쩌면 좋은 선택이냐 나쁜 선택이냐를 결정하는 건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행동일지도 몰라요.



끝으로 마지막단락에서 728재보선에 대해 언급합니다...
뒷이야기... 트위터에 올린 글 두 단락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뭐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긴한데, 
막상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만화부터 마감해야하겠죠. :)



by 김태 | 2010/08/01 04:36 | 고전어 | 트랙백(1) | 덧글(16)

레퀴엠, 5월에 떠난 이들을 기리며



5월22일자 한겨레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칼럼입니다.
저는 파리한 책벌레라, 생생하고 감동적인 글은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5월에 떠난 이들을 추모하렵니다.







레퀴엠, 5월에 떠난 이들을 기리며



죽음을 맞아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차피 죽을 텐데, 어째서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걸까요? “헛되고 헛되다” ― 라틴어 ‘바니타스 바니타툼(vanitas vanitatum)’을 옮긴 말이지요.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서>)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교훈을 그려내기 위해, 네덜란드 화가들은 ‘바니타스 정물’이란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생각해냈어요. 꽃과 유리그릇, 비눗방울과 인간의 공통점은 뭘까요? 꽃은 시들고 유리는 깨지고 인간은 죽게 마련, 즉 이들 모두 덧없는 존재라나요. 그러므로 이런 정물화를 보시거들랑, 사진 뺨치는 그림솜씨에만 감탄마시고, 우리 한갓된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그날을 생각해 달래요. 




스바냐라는 예언자는 무서운 말을 했더군요. “그날은 신의 분노가 터지는 날, …나팔 소리 울리며 함성이 터지는 날이다. …신의 분노가 타오르는 날, 온 세상은 활활 타버리리라.” 이 끔찍한 상상은 훗날 <레퀴엠>의 가사가 됐지요. 모차르트의 <디에스 이레(dies irae)>는 천둥번개와 같은 아찔한 가락으로 세계의 종말을 그려냈어요. “진노의 날, 바로 그날, 세상이 재가 되어 사라질 그날.” 베르디는 귀를 찢는 금관 합주에 천사들의 나팔 소리 <투바 미룸(tuba mirum)>을 담았고요. “나팔은 놀라운 소리를 흩뿌리며….” 




에라스뮈스는 “인간은 물거품(호모 불라, homo bulla)”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소개합니다. “인생살이보다 덧없는 것도 없고, 그보다 공허한 것도 없다.” 미켈란젤로는 벽화 <최후의 심판> 한복판에 세상 끝나는 날 나팔 부는 천사들을 그려 넣었는데요, 그들의 나팔 주둥이에서 비눗방울이 나오도록 바꾸어 봤습니다. 라틴어 ‘불라(bulla)’는 물거품이라는 뜻도 있고, 비눗방울이라는 뜻도 있으니까요. 한편 그림 왼쪽 아래 비눗방울을 부는 꼬마는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에서 데려온 친구이지요. 유리병에 담긴 꽃과 비눗방울, 깃털 등이 바니타스 정물의 전형적 도상입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풀과 나뭇잎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을 지으면서, 전통적인 레퀴엠 구성을 따르지 않고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에서 직접 가사를 추렸어요. 두 번째 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그러나 인생이 헛되기만 할까요? 내 생명이 다하더라도, 나와 같은 뜻을 계속 이어나갈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삶은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이렇게 읊었죠. “인간의 세대란 나뭇잎과도 같아, 바람에 한 세대의 잎이 지더라도, 봄이 오면 새로운 세대가 나무에 움트듯이.” 



5월.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이 글을 씁니다. “5월은 한국에만 있지 않다…. 1980년 5월이 광주 것이라면, 1984년 5월은 필리핀 몫이다. 그리고 1990년 랑군, 1992년 방콕, 1998년 자카르타처럼 아시아는 몫몫이 5월을 불렀다”(정문태). 5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렇게 끝나죠.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30년 전 도청을 사수하던 젊은 넋들은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부엉이 바위에 올라 고향 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그이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by 김태 | 2010/05/23 03:21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7)

어둠은 빛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또는...


(아차차. 중간에 어둠은 빛을 이긴 적 없다는 말을, 실수로
빛은 어둠을 이긴 적 없다로 쓴부분이 있었네요.이런이런.
실수를 지적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흑.)



격주로 연재하는 칼럼. 
이번에는 촛불 두 돌을 맞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에 제법 공을 들였습니다. 촛불 두 돌이니까요 :)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는 요한복음 1:5의 구절을 바탕으로, 이번 원고를 써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구절은 
시국미사 때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인용하여 유명해진 문구이지요. 

저 번역은 <공동번역> 성서입니다. 이 번역에 참여했던 분 가운데 문익환 목사님이 계십니다. 
<공동번역>에는 힘있는 문장들이 꽤 있는데, 아마 문 목사의 문장력에 덕을 입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
<개역한글판>에는 "어두움이 빛을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되어 있어요.

즉,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거나, 또는 
빛을 알아차리지 못해봤다는 겁니다.

두 가지 번역 모두 가능합니다. 
그리스어 "우 카텔라벤(ou katelaben)"이라는 말을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저는 경전 해석에서,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 이런 게 좀 싫습니다.
어차피 외국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두 가지 뜻을 화해시켜보고자, 이번 글을 썼습니다.


아무리 억압해도 감출 수 없는 ‘빛’
김태권 /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얼마 전 촛불 두 돌을 맞았습니다. 당시 모아뒀던 시민들의 풍자와 패러디를 다시 꺼내 낄낄 웃으며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그런 날카로운 촌철살인이 오히려 줄었더라고요. 왜? 고발당하지 않을까 소송 걸리지 않을까 모두들 말 한마디 꺼내기 조심스러우니까요. 그때 우리는 소통의 부재를 한탄했는데,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더 줄었네요."

"예나 지금이나, 나라님들이 시류에 뒤처질 때면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려 들지만, 어둠이 빛을 이긴 적 없듯 그 무모한 시도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바뀐 민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빛을 알아차리지 못하던 어둠처럼, 아침이 밝으면 사라지겠지요."




종교색이 있는 텍스트로 글을 쓰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그 종교를 좋아하는 분들은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보는 걸 싫어하고
그 종교를 싫어하는 분들은 텍스트 자체를 다루는 걸 싫어하시니까요.

그래도 '어둠은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저 문장은 중학생때부터 워낙 좋아하던 글귀인데다
시국 미사 때 저 말을 듣고 너무 좋았기 때문에, 굳이 적어보았습니다. 



by 김태 | 2010/05/08 00:57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14)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