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08일
아, 참, 좀 늦었지만, 책 두 권이 보름 전에 나왔습니다.
실은 책 나온지 보름이 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책들아 미안해). 이제 약간이나
마 정신을 차려, 책들이, 두 권, 잘 태어났다고 말씀드립니다. .

고, 반응도 괜찮습니다. 한겨레 서평은 - <여기 클릭>해 주세요.
아시다시피, <팝툰>에 연재하던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를 바탕
으로, 1년 동안 더 작업한 만화입니다. 새로 그린 부분 많습니다.

입니다.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이 라틴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하시
고, 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이 번역을 바탕으
로 현재 한겨레신문에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칼럼에 글과 그림
을 기고하고 있습니다(저로서는 과분한 기회이지요). 책소개는요
한겨레는 <이 기사>의 두번째 항목을, 연합 서평은 <여기>를 읽
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사실 책이 오랜만에 나오는 것이라 마냥 즐거웠어야 하는데, 시국
이 시국인지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왠지 무안해서 울고 싶지 않았
는데, 솔직히 눈물이 나는 걸 어쩔 수 없었습니다. 책이 나온 기쁨
이 노무현대통령 서거로 보름 동안 유예되었지요.(이런 상황에 대
고 '국민 세금 1원도 쓰지 말라'니, 변 드보르작 양반, 세금 얼마나
내는지 궁금하더군요. 아, 이 인간 이야기좀 그만해야 할 텐데...)
솔직히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도, 보름 동안 못하다가 지금 처음 하
는 겁니다. 제가 훌쩍 거렸단 사실, 저희 부인도 아직 모르거든요.
(알면서 모른 척 해주는 것일지도 몰라요. 속깊은 사람이라...) .

본의 아니게 헛갈리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흑흑. 물의를 빚
어 죄송합니다. T_T 다른 책입니다. .
다음 주 쯤에 세 번째 책이 나올 계획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책의 탄생을 기뻐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정권, 정말 심장
이 철렁~철렁~ 내려앉는 정권인데요, 좀 한동안 사고 좀 치지않았
으면 좋겠네요. 꼭 책을 위해서라기보다, 마음 편하게 며칠 일에 집
중하면서 살고 싶답니다. 민생~민생~ 말만 하지 말고, 시민들이 생
업에 전념하게끔 내버려뒀음 좋겠어요! 고달프답니다. 잇힝. .
# by | 2009/06/08 06:09 | 미술사 | 트랙백(1) | 덧글(40)
2008년 08월 03일
에라스무스 (6) - 아르킬로코스적인 말, 표현의 자유
바로 저번주 한겨레 연재 올라간 글입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조금 달랐어요.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에, 우리의 명박 패거리께서
인터넷 댓글까지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던 것이지요. 음. 가
만히 있으면 욕 한 번 덜 먹을 텐데, 그걸 굳이 한 마디씩 짖으시고
욕을 버는 거 보면, 우리 변태 명박 각하께서는 엄청난 마조히스트
가 아닐까 싶네요. 암튼 글 마지막 부분에서 살짝 명박과 졸개들을
씹어 주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들은 독설을 들어야해요. 그래서 남
들이 자기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이나마 알아야해요. 아휴..
중간중간 붉은색 글씨는, 분량 맞추느라 퇴고하면서 지운 부분이에요.
연재분엔 이 부분 없지요 - 이글루스판은 일종의 감독판이랄까요. ^^

홀바인(小)이 그린 초상
풍자와 독설, 아르킬로코스의 두 얼굴
영화 <300>에도 나오다시피 스파르타 사람들은 영웅적인 죽음을 칭송했지요. 전장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방패를 챙겨주며 스파르타의 어떤 어머니는 달랑 다섯 마디를 건넸다나요. 우리말로 옮기면 “이걸 들고 아니면 여기 실려” - 즉 싸움에 이겨 ‘방패를 들고’ 개선하든가 아니면 명예롭게 전사하여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는 거죠. 체면 좀 구기더라도 살아서 돌아오라는 모정은 깊이 숨긴 채, 죽어도 좋으니 방패만은 놓지 말라고 하네요.

의 방패 - 다비드의 그림에서
그런데 이토록 장엄한 군국주의의 흐름을 통렬하게 풍자한 시인이 있었어요. 방패를 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살아남은 게 중요하지 그깟 방패가 대수냐며, 하나 새로 사고 말겠다던 유쾌한 양반. 그의 이름은 아르킬로코스! 최초의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어떤 운좋은 트라키아인이 훌륭한 내 방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도망을 칠 때 그것을 숲 속에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도망을 할 수가 있었다.
그까짓 방패가 무슨 대수일 것인가,
그와 같은 것을 다시 사면 그만인 것을!
(번역 H.D.F.Kitto / 김진경) [또는]
트라키아의 어떤 자가, 내가 어쩔 수 없어서, 울창한 숲에 버리고 온,
흠 하나 나지 않은 내 방패를 집어 들고 자랑스레 떠벌이고 있구나. 내 생명을
보존했는데, 왜 내가 그깟 방패를 걱정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 방패는 이제
없지만, 이제 똑같이 훌륭한 다른 방패를 사면 될 것을.
(원전번역 안재원)
엄숙함이 지나쳐 숨이 막힐 때 풍자는 우리 숨통을 틔워줍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처럼, 사회에는 따끔하게 한 방을 쏘아줄 등에가 필요하니까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명예를 남겨야 한다고 사회가 한목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서처럼 ‘그 가죽 때문에 호랑이가 죽고 헛된 명예 때문에 사람이 죽는 거’라 꼬집어주는 개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르킬로코스의 두 얼굴은 우리를 난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풍자란 원래 두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웃음의 긍정적 힘을 찬양하는데, 마지막 몇 줄의 반전을 통해 ‘그러나 그 안에는 무언가 씁쓸한 맛이 있다’며 웃음이 얼마나 공격적일 수 있는지 말합니다. 나의 풍자할 수 있는 자유는 남의 독설을 들어야 하는 부담과 함께 옵니다.
물론 남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표현은 제한되어야 하겠지요.
똘레랑스를 위한 엉똘레랑스 - 관용을 위한 불관용이라더군요.
그러나 이 경우조차도 누구나 동의할 기준을 잡기 어렵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원래 이러할진대, 정말 위험한 건 독설이 아니라
독설을 금지하려는 행태가 아닐까요? 소통은 뒤로 하고 공권력
을 동원하여 댓글단 시민들까지 윽박지르는 어르신들한테 독설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요즘입니다.
# by | 2008/08/03 04:05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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