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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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나치

한예종 사태의 해결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합시다.



지금의 한예종 사태는,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킨 것과 비슷하다는 지적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원래부터, 지금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 정
책이, 바이마르 말기 나치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나는 생각해왔으니까요.        .

hdic.kr이란 역사사전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오, 역사에 이름을
남기셨군요, 우리 유인촌 장관 각하! 유취만년이란 말을 아시려나.

나는 아르코 미술관이 어떤 식으로 유인촌씨를 등에 업은 세력들에게 털렸는지,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미술계가 나서서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당
할 수밖에 없었지요. 또 나는 합창단이 어떤 식으로 유인촌씨 일당에게 당했는지
를 먼발치에서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음악계가 나서지 않았고, 싸움은 계속 되
고있습니다. 이번에는 한예종입니다. 한예종은 쉽게 먹지못할 겁니다. 아마 유인
촌씨와 그 일당은, 한예종을 우파 진영으로 가져가기 보다는, 폐교시키는 수순으
로 갈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예종을 삼켜 봤자 그쪽에는 이런 예술 학교를 맡
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아시다시피 X듣보 선생(아이쿠, 고소당하겠군요)이 앞잡
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X씨보다 조금이나마 수준높은 문화계 인력을 구할 수
는 없었을 테지요. 하기야 지금와서 이명박정권의 부역자 노릇을 앞장서서 할 사
람이 어딨겠어요. 레임덕이 내일모렌데... 당장 8월에 방문진 이사 하겠다는 X모
씨 같은 분 빼면 말이에요 ( 그런데 그 자리가 신청하면 다 시켜주는 자리인가요?
무슨 자격으로 X선생은 자기가 MBC를 개혁하겠다고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건지.
MBC에서 명예훼손 소송같은거 걸면 어떻게 될까요? 궁금해집니다). 그러다보니
 상황이 가관입니다. 보나마나 더러운 도그 파이팅, 그리고 진흙탕 싸움이 될 것입
니다. 하여 많은 문화예술인이 발을 빼고 지켜만 보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그러나
그러지 마세요. 함께 뛰어들어 해결합시다. 더럽지만 피와 진흙을 묻혀 가며 싸워
야 합니다. 그래야 완장질하는 사람이 문화예술판에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금이 히틀러 시대입니까, 스딸린 시대입니까,
박정희 시댑니까?  더는 안됩니다.

'한겨레ESC'에 실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커집니다. 오른쪽 구석에서 눈에 확 띠는
 'X모씨' 를 찾아보세요. '듣X'란 말만 나오면 흥분하시던데, 한겨레 신문도 고소할까요? 끙.
그나저나 한나라당은 왜 저 친구를 미디어위원회에도 넣어주고 뒤를 봐주고 있는 건지요?


문화예술지못미 프로젝트를 고재열 기자님이 제안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참
여하고 싶습니다. 물론 당장은 원고 밀린 것이 너무 많아서, 만화 참여는 몇주 지
나서야 가능하겠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링크/트랙백을 걸고자 합니다.      .


by 김태 | 2009/06/07 22:21 | 글그림 | 트랙백(2) | 덧글(21)

에라스무스(12) - 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지난 해 국방부 금서 사건이 있었죠. 저를 포함하여 많은 작가님들이 '왜 우리 책은 불온서적

리스트에서 뺐느냐'며 투덜대기도 하였습니다만...링크: http://kimtae.egloos.com/1917461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 금서 사건에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 중 2명을 군에서 파면했군요. 역시
2MB의 졸개들(제 표현이 아닙니다)은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2MB를 닮아서 그런가 보죠.

돌아온 '그때그사람'들. 조중동의 갈곳없는 칼럼니스트들. 전여옥 신지호 등 거기서거기인 분
들. 그들은 대놓고 불관용을 주장하고있습니다. 나치처럼, 네오나치처럼, 홍위병처럼. 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관용과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

작년 결혼식하기 직전,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연재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 앞부분은 관용
을 주장했던 사상가, 특히 성 바울과 에라스무스와 볼테르를 언급합니다. 글 뒷부분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요, 성 바울도 에라스무스도 볼테르도 물러서지않는 싸움꾼이었음을 상
기합니다. 사상의 자유와 진정한 관용을 지키기 위해, 때로 우리는 싸워야합니다. 간단치않은
문제입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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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님의 지적을 받고 보니 '세계종교'라는 말이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것 같아,
'보편종교'라는 표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무장선교'에 대해
저야 물론 부정적인 입장입니다만.. 음, 그러고보니 고대사에서 '세계종교'니 '세
계제국'이니 하는 말도 '지중해세계'를 전제하고있으니, 어찌 보면 유럽중심주의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지중해세계엔 일부 아시아와 일부 아프리카도 포함
됩니다만, 아무래도 유럽위주의 관점이 반영되긴 했겠죠. 아 복잡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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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로마의 희극시인 테렌티우스가 이런 말을 했다죠. “Quot homines, tot sententiae(쿠오트 호미네스 토트 센텐티아이, 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는 누구나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탄식합니다. 이렇듯 다른 의견 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라스무스는 관용의 미덕을 제안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공동체마다 풍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역설했지요. 이 관용의 정신 덕분에 예수 운동은 (유대교의 일개 종파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교라는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이 관용의 정신 덕분에 예수 운동은 (특정 민족에게만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라는 보편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고전학자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 당시의 종교 갈등을 한탄하였습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이 만약 바울의 넉넉함을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하찮은 문제로 이렇게까지 싸우고 갈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그저 잊고 지내도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종교개혁’이란 지적 운동은 ‘종교전쟁’이란 권력자들의 폭력으로 변질됐습니다. 훗날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복음서에도 나오지 않는 사소한 내용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원인”이라며 개탄했다지요. 그러나 오늘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차이’ 때문에 죽고 죽이고 있으니, 사도 바울이 안다면 얼마나 당황할까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네 명의 사도>를 고쳐 그려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림 오른쪽에 큰 책과 칼을 들고 머리 벗겨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전승에 따라 바울은 대머리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랑말랑한 사람이었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발견되면 어디라도 찾아가 말과 글로 끝장토론을 벌였고, 교회의 대선배인 베드로(그림 왼쪽에 열쇠를 들고 있는 사도입니다)마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면박을 주었습니다.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역시 사도 바울을 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위해 용감히 싸운 혁명적인 투사로 해석해냈지요.


에라스무스 역시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비위도 약하고 건강도 나빠, 싸움에 휘말리는 걸 무척 싫어했지만, 잘못된 일을 보면 신랄한 독설을 날렸고 싸워야 할 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말년의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의 전기를 쓰며 히틀러에 대한 스스로의 분노와 절망을 달랬다고 합니다.


부조리에 싸움을 걸지 않고 휩쓸려 가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더 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한다면 관용이란 덕목은 진작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불관용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회피일 뿐입니다. 권력자가 사상을 통제하고 학생들에게 편향된 의식을 주입하는 시대에는, 가진 자들의 횡포가 시장 자유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시대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것만이 관용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요.





by 김태 | 2009/03/20 01:19 | 고전어 | 트랙백(1) | 핑백(2) | 덧글(26)

히틀러 출세기 세번째 업로드




나날이 난감한 방향으로 치닫는 한국사회에서,
여러분, 간밤도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주는 일이 많아서 많이는 못올립니다. ^^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히틀러 출세기 앨범에서... 12쪽부터 16쪽까지가   새로 올린 연재분
입니다. 개강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십자군 3권도 서둘러야 하는데..

내용 : 언론재벌 후겐베르크는 듣보잡 정치인 히틀러를 키워주는데...


예.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부산대교지에 실었던 원고를 다듬어서 올리
는 것이랍니다. 뭔가 좀 얄궂군요! 당시는... 한국사회가 무지하게 진보
적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던 시절입니다. 지름길로 빨리 가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그러나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나 봅니다. 진보적이라 자처하던
몇몇 정치인들은, 결국 아쉽게도 기존 정치세력과 큰 차이없는 행보를
보였고,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러는 사이에 옛날에 큰 소리치던 양반
들이 다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바 그대
로입니다. 원래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긴 한데...'히틀러' 같은 이상한
사람만 어디서 튀어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름길도 요행도 바
라지 않고, 뚜벅뚜벅 가던 대로 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겠지요?  ^^;


by 김태 | 2008/03/10 09:38 | 글그림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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