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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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고통

엄친아보다 더 잘난 아킬레우스, 그 이름의 비밀


논문 슬슬 준비합니다. 오뒷세우스에 대해 쓸 것 같습니다.

하나둘씩 여기 적어가며, 머리속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

아킬레우스에 대해 우선 적어볼까 해요.
그냥 옛날 이야기^^삼아 읽으시면 감사.


꽃미남 아킬레우스. 클릭하면 그림이 커집니다.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희랍 최고의 영웅,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 그런데 아킬레우스는
'엄친아'가 아니었습니다. '엄친아'를 훨씬 뛰어넘는 존재였지요. 그의 어머니는 ‘신’이었으니까요.


테티스와 제우스. 앵그르 작품입니다.
테티스 여신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일리아스> 1권에 나오는 장면이지요.

테티스 여신이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최고신 제우스는 (늘 그렇듯이) 아름다운 테티스에게도 연정
을 품었습니다. 한때 결혼을 생각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제우스는 테티스에게 손끝하나 대
지 않았습니다(제우스로서는 대단한 일이었죠). 이유인즉슨 다음과 같은 예언 때문이었어요 - “테
티스가 낳은 아들은 그 아버지를 능가하리라”는 예언이요.                                                    .

‘뭣이? 나를 능가해?’ 제우스 스스로도 자기 아버지를 때려눕히고 두목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이
예언을 듣고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테티스를 인간에게 시집보낸 것이죠..
그리하여 아킬레우스는 아버지 펠레우스 왕을 능가하는 뛰어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


아킬레우스는 참 잘난 인간이었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두루 빼어났지요.


(1) 우선 전사들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나타나면 모두모두 벌벌벌 떠네”였습니다. <일리아스>
에는 아킬레우스를 바라만 보고도 군대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정도로 강했다는 것이죠.

(2) 가문도 잘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왕, 어머니는 여신. 엄마친구들은 올륌포스의 신들. 엄마친구
들이 하나둘씩 집어주는 물건은 물론 명품입니다. 아킬레우스의 삐까뻔쩍한 황금방패를 묘사하는
구절이 수백 행이나 됩니다.                                                                                            .

(3) 얼굴도 잘 생겼습니다. 그것도 조각미남이 아니라 꽃미남이었습니다. 엄마가 아킬레우스를 젊
은 공주들 틈바구니에 숨겨놓은 일이 있었는데, 찾으러 온 사람들이 눈으로 봐서는 구별해내지 못
했다고 합니다. 너무 곱상하게 생겨서지요. 근육남에 덧붙여 초식남의 매력조차 겸비했던 겁니다!

여장한 아킬레우스가 발각되는 장면.
무기를 보고 반가워하다 들통났대요.


(4) 취미도 고상합니다. 아킬레우스는 휴식 시간에 뭘했을까요?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오오, 뮤지션!




으이구
잘났어 정말




그러나 이런 아킬레우스는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마음에는 슬픔과 분노와 한탄이 끊일 날
이 없습니다. <고통>이 언제나 그의 주위에 있습니다. 아킬레우스(AKHilleus)라는 이름에는 희랍
어 아코스(AKHos)가 들어있다고들 합니다. 아코스의 뜻이 바로 <고통>이지요. (그러니까 아킬레
우스라는 이름은, 우리말로는 대략 '괴로움이' 또는 '고통이' 정도가 될지 모릅니다.) 아킬레우스는
그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자였고, 주변에도 고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

엄친아보다 빼어난 아킬레우스였고, 자기 목숨과 맞바꿔 영원한 영광을 얻었지만, 마음의 평화만큼
은 얻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시인 호메로스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이었습니다.                .


대시인 호메로스 형님


인간은 아무리 잘나도 늘 행복할 수는 없고
잠시 행복하더라도 언젠가는 죽어야만 한다
- 이것이 호메로스가 생각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 역시 호메로스의 주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해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by 김태 | 2009/10/10 09:30 | 고전어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에라스무스 (9) - 고통 앞의 인간



"너 무슨 일있냐?" "아닌데. 왜?" "신문보고 무슨 일 있는 줄로 알았다."
지난 토요일에 있던 대화입니다.  친구 윤선생과 전화 통화 중에, 이번
신문글이 너무 어두워서 무슨 일인가 했다고 하네요."별일 없는거지?"

아. 원래는 지난 주말에 실릴 글이었는데,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서 한주
늦춰진 것이었습니다. 지난주 지지난주에는 한국사회에 우울한 일이 워
낙 많았지요. 톱스타가 자살하고(정말 충격받았습니다) 그걸 두고 하이
에나 같은 여당 것들이 달려들어 찌질대고,그런와중에 주가는 지옥으로
환율은 달나라로
. 명박과 만수의 개념 역시 환율을 따라서 저 머나먼 안
드로메다로.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의 어이는 우주로, 희망은 지옥으로.

뭐 저부터도 뉴스보다가 우울하던 시즌이라서, 우울하고 슬픔에 대한 글
을 써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 주 늦춰지면서, 핀트가 약간 어긋난듯.
 




 

고통 앞의 인간

      불로써 확인된 황금 
     Aurum Igni Probatum 아우룸 이그니 프로바툼

      



      때로 슬픔이 몰려옵니다. 반 고흐의 편지처럼, “불행이 나만 따로 비켜가지는 않으니까.”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한 것 같고 세상이 나를 적대하는 것 같고, 마침내 시인 백석의 말처럼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다가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에라스무스는 ‘불로써 확인된 황금’(아우룸 이그니 프로바툼, aurum igni probatum)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전합니다. 고통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불 속의 황금에 비유한 것이지요. “황금은 불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으며 도리어 더 아름답게 빛난다. 진실로 선한 사람들은 불운 속에서도 제 성격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어둠 속의 빛처럼 반짝인다”고 그는 썼습니다.

<천공개물>입니다. 이 책이 한국어
로 번역된 사연도 매우 심란하지요.


     중국 명나라 때의 과학기술서 <천공개물>은 불 속의 황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용광로의 은에 풀무질을 하면 불똥이 한번 일었다 사라질 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지 황금만이 풀무질을 할 때마다 불똥이 튀며, 세차게 할수록 더 거세게 불꽃이 이는 것이다. 금이 귀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은은 고온에서 녹이 슬어 그 빛을 잃지만, 금은 잘 산화하지 않기 때문이라나요. 그림 아래쪽 풀무질하는 모습은, <천공개물>에 실린 옛 판화를 본뜬 것입니다.



     위쪽 청년의 모습은 케테 콜비츠의 전쟁 반대 판화에 보입니다. “평화를 외치던 친구의 무덤을 / 군화가 짓밟으며 간다”고 시인 브레히트가 노래한 것처럼, 20세기 초반만 해도 반전 운동은 목숨 내놓고 하는 일. 1차 대전을 반대하던 리프크네히트가 전후의 혼란 속에 살해되자, 콜비츠는 그의 추모 판화를 제작합니다. 시련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신념을 지킨 사람들은 아름다운 빛으로 남습니다.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케테 콜비츠의 판화.
 
http://www.spartacus.schoolnet.co.uk/GERliebknecht.htm
저는 google에서 이 페이지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한편 고통은 때로는 차가운 이미지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글쎄요, 뜨거운 탄압이 더 괴로운지 차디찬 무관심이 더 서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침묵 속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우정의 증표”라는 사실은 확실하겠지요. 20세기 남미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스 신부의 말입니다.

 

19세기 조선의 김정희는 멀리 유배를 떠납니다. 높은 벼슬에 있을 때 살갑던 주위 사람들은 찬 서리를 맞은 듯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시기에 옛 제자 이상적은 여러 해 동안 그를 챙겼고,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려 선물합니다. ‘세한(歲寒)’ 즉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지요.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논어> 자한편) 뜨거운 불길 속에서 황금이 번쩍이듯, 차가운 눈 속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른빛을 뿜습니다.
 

- 이 글을 쓰면서 백석의 시를 몇 번
이고 읽었습니다.아름다운 시에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큰 고통도 사위게 마련.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나는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에” 겨울의 끝을 기다리며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해 봅니다. (백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사실 글을 쓰면서 꼭 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면의 부족으로
넣지 못하였지만, 구스타보 구띠에레즈 신부의 '욥에 관하여'에 대해 쓰
고 싶었어요. 이 책의 지은이 구띠에레즈 신부는 (본문에도 나오다시피)
남미해방신학을 하시는 분이고, 이 책의 부제는 '무고한 자의 고통과 하
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판본의 표지엔
콜비츠의 석판화가 이용되고 있어요.  10년 전, 주석을 달아가며 천천히
읽던 책이었습니다. 음. 나중에 이 책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요.  아
무튼 일단 지금은 굳고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버텨보도록합시다.



by 김태 | 2008/10/20 11:07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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