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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의 넋두리, 삶은 그래도 지속된다 - <캉디드>에서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는, 이 세계에 만연한 ''에 대한 체험기입니다. 


주인공 캉디드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군대에서의 가혹 행위, 종교 전쟁, 살인, 강도, 도둑놈, 종교 재판, 이명박 등 도덕적인 악과
폭풍, 지진, 질병, 지구온난화 같은 자연적인 악을 두루 겪습니다. 

볼테르는 이런 끔찍한 내용을, 경쾌하고 해학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기에 따라서는 풍자적인 모험담으로 읽을 수도 있고, 또는 심각한 철학소설
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볼테르 자신이 잘 나가던 철학자였으니까요). 훌륭한 작품이지요.


캉디드는 유럽 대륙의 악을 겪은 다음, 운명의 장난(실은 볼테르의 장난이겠지만요)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의 악을 겪으러 대서양을 건넙니다. 바다 위에서, 함께 탄 노파가 
다음과 같이 넋두리를 하지요 :



... 하지만 나는 아직 삶을 사랑해요. 이 어리석은 나약함이 아마도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요? 등에 진 무거운 짐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싶어 하면서도 여전히 그대로 지고 있으려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요? 삶을 혐오하면서도 그것에 집착하다니! 무서운 뱀을 품에 안고 있다니! 우리 몸을 파먹는 줄 뻔히 알면서도, 결국 그것이 우리 심장을 파먹을 때까지 내버려 두다니! 이런 바보가 또 어디 있을까요?

운명의 장난으로 내가 돌아다닌 여러 나라와 내가 일했던 여러 여관에서 나는 자기 삶을 저주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어요. ...

어쨌든 아가씨, 나는 경험이 많고 세상을 잘 알아요. 한번 재미 삼아 (이 배의) 승객들 모두에게 자기 과거를 얘기하라고 해보세요. 만일 자기 인생을 이따금씩 저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를 바다에 거꾸로 쳐넣으세요.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이번에 새로 나온 열린책들 번역, 66-67쪽.






사이먼 래틀이 지휘합니다. 번스타인 작곡, <캉디드 서곡>.
번스타인이 <캉디드>를 지나치게 모험이야기로만 해석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긴 합니다. 신랄하기 그지없는 쇼스타코
비치 형님이 <캉디드>를 작곡했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
보지만, ...아마 스딸린이 살려두지 않았겠죠?                  .





잠시 한국에 들른 후배와 밥을 먹던 중, 
후배가 말했습니다. "형, 이번에 기고하는 글에 <캉디드>인용해."
내가 답했습니다. "어. 나도 주말에 나올 칼럼에 <캉디드>인용해서 쓸 건데."

아이티와 칠레의 지진 때문인가요. <캉디드> 생각을 요즘 자주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 왜 세상에는 안 좋은 일이 자꾸 일어날까요.




1 7 5 5 년   리 스 본 대 지 진


31-33쪽 :
...그들이 리스본에 막 도착하였을 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바다가 부풀어 올라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들을 덮쳐 일거에 부숴 버렸다. 불꽃과 재의 회오리가 거리와 광장을 휩쓸었다. 집이 무너지고 지붕이 뒤집혀 바닥에 떨어지고 바닥이 갈라져 사라졌다.

남녀노소 합쳐 3만 명의 주민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죽었다. (난폭한 살인자였던) 선원은 휘파람을 불고 쌍소리를 섞어 가며 말했다.

<여기서 뭔가 생길 것이 있겠는데.>
 
...선원은 그 즉시 폐허 속으로 달려가 죽음을 무릅쓰고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돈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술을 마시고 대취하여 잠을 잤다. 술이 좀 깨자 이번에는 아무 여자나 돈을 주고 사서는 죽은 시체와 죽어 가는 사람들이 즐비한 폐허 위에서 여자를 안았다.

(학식높은 철학자인) 팡글로스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여보게, 이건 옳지 않아. 자네는 보편적 이성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어. 지금은 합당한 때가 아니라고.>

<제기랄! 나는 뱃놈이고 바타비아 출신이오. 나는 일본에 네 번 갔는데 그때마다 십자가를 밟고 지나갔소. 보편적 이성 같은 건 딴 데 가서 알아보시구려.>

그동안 (순진한 낙관주의자인) 캉디드는 떨어진 돌에 맞아서 상처를 입고 길에 쓰러져 있었다. 건물 파편에 반쯤 파묻힌 그가 팡글로스를 불렀다.

<선생님! 포도주하고 기름 좀 갖다 주세요. 꼭 죽을 것만 같아요.>

그러자 팡글로스가 대답했다.

<이번 지진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야. 작년에 남아메리카의 리마도 똑같은 지진을 겪었지.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라고. 리마에서 리스본까지 지하에 유황대가 있는 게 틀림없어.>

<물론 그렇겠죠. 그렇지만 제발 기름과 포도주 좀 - >

<아니, 그렇겠다니? 이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야.>

캉디드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팡글로스는 근처 샘에서 물을 퍼왔다. ...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인생 그 자체네요.
볼테르, 절묘한 솜씨입니다. 코엔형제나 타란티노 생각도 좀 나고요. 



by 김태 | 2010/03/12 03:39 | 읽는책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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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VP at 2010/03/12 06:30
그래도 러브크래프트가 안썼으니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주인공 되는 양반은 정신병원 신세를 졌어야할지도..'ㅅ';;;
Commented by 김태 at 2010/03/24 00:41
러브크래프트의 등장인물이었다면... 정신병원이면 매우 편안하고 쾌적한 곳 아닌가요. T_T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따위의 곳"으로 보내지는 게 허다한 일이다보니...
Commented by 킬리아니 at 2010/03/12 13:01
...보통 저런 상황에서는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아니면 재난지역에서 도망치거나 구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게 정상인데 '보편적 이성'이니 '유황대'니 하는 것을 보니 팡글로스라는 케릭터는 참 희한한 인간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10/03/24 00:40
요즘 드는 생각인데, 아마 볼테르가 자기자신을 비꼬는 의미로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지식인의 한계, 철학자의 한계를 느꼈을지도 모르죠. 저 수많은 지식이 그와 친구들을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10/03/17 21:44
캉디드라.....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
Commented by 김태 at 2010/03/24 00:39
예. 꽤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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