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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눈물 없는 전쟁'은 없다 (뒷얘기)


저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던 글입니다. 토요일자 신문에 실렸습니다.
1년반 쯤 연재를 하고 있으니 좀 수월해질만도 한데, 번번이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쓰는군요.
제가 배우는 게 좀 늦은 모양입니다. 흑흑.


'눈물 없는 전쟁'은 없다 -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주제는 첫단락과 마지막단락에서 밝혔습니다. 
첫단락 : 2010년 새해가 밝았건만 한국도 세계도 다사다난합니다. 이슈가 얼마나 많은지,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가 묻힐 지경이네요. 이대로 어물쩍 넘어갈까봐 걱정입니다. 우리 사회엔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한데요.

마지막단락 : 군사독재 시절, 피카소가 한국에서 금지작가였던 사실은 아시죠? <게르니카>와 짝을 이루는 그림이 바로 그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작품입니다. 한국전쟁의 비극과 민간인 학살을 다룬 대작이지요. ‘눈물 없는 전쟁’, 슬픈 역사를 겪은 한국 사회가 특히 귀 기울여야 할 격언 아닐까요? 우리 사회엔 역시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합니다.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코너를 쓰며 염두에 두고 있는 글쓰기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되돌이구성(ring-composition)이고, 
다른 하나는 연쇄방식입니다. 
요즘 글쓰기 방식과는 조금 다른, 오래된 수사법인데... 나중에 자세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이번 글에서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그에 대한 반박을 대략 언급하였습니다. 
저번 포스팅에서 이 문제를 간단히 소개만 했더랬는데, 더 깊이 생각해봐야할 주제 같습니다.
http://kimtae.egloos.com/2861253 (남겨주신 덧글들 감사합니다. 많이 공부가 됐습니다.)

글 후반부에는 늘 그렇듯 라틴어 격언과 그림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원래 그런 코너니까요)

라틴어 격언 : 에라스뮈스는 무력충돌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눈물 없는 전쟁’(bellum haudquaquam lachrymosum, 벨룸 하우드쿠아쿠암 라크뤼모숨)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소개하지요. “물론 사람들은 눈물 없는 전쟁이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를 신봉한다는 저 왕후장상들…의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면 사람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그림 해설 : 우리네 평범한 이들에게 전쟁은 불행일 뿐입니다. 극우파 프랑코 장군은 히틀러와 손잡고 게르니카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렸지요. 피카소는 분노하여 대작 <게르니카>를 그립니다. 사지가 절단된 주검,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  그림 오른쪽 위편의 무시무시한 형상들은 스위스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이 그린 <묵시록의 네 기사>에서 따왔어요. <요한 묵시록>에 따르면 네 기사가 세상의 종말과 함께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들은 각각 질병·기근·죽음 그리고 전쟁이지요.



아놀드 뵈클린으로 보냈는데, 기자님이 아르놀트 뵈클린으로 고쳐주셨어요.
제가 또 실수했더라고요. 글 쓰고 편집하고 인쇄되는 과정이, 글쓴이 혼자 잘나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번번이 느끼고 있습니다. 늘 신세를 지고 있네요
'편집자의 말은 항상 옳다, 그들을 따르라.'
스티븐 킹 형님의 말씀입니다.^^

by 김태 | 2010/02/28 14:44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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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VP at 2010/02/28 14:56
원래 전쟁이란 게, 철저히 '윗대가리'의 계산기에 의해 진행되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그 외의 사람들에겐 손해 정도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ㅅ';;;;

※요즘 민중가요 포스팅 준비하면서 알아낸 EiserneFront 운동같은 걸 보면, 새로운 걸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10/03/02 05:49
Iron Front 말씀이시죠? 저게 잘 됐으면 히틀러를 막았을텐데, 안타깝긴 합니다. SPD지도부가 너무 물러터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SPD지도부가 빡세게 나왔더라면 가톨릭중앙당과 손잡을 수 없었을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바이마르 때 SPD를 보면 저는 일단 답답합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손놓고 있다가 당한 것 같긴 합니다. 최근 촛불정국 때도 지도부가 없었던 것이 참 아쉬웠는데, 바이마르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적어도 국민대부분이 히틀러를 바라고 있었다는 식의 잘못된 상식은 고쳐졌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leopord at 2010/02/28 16:07
지난 번 포스팅에 이어 생각해 본다면, 무武에 대한 해석에 있어 완전히 무기를 놓는 절대평화의 견지를 내세운 춘추전국시대 사상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배움이 모자란 탓이겠지만, 노자는, 한편 묵자는 어땠을까요.

논쟁은 논쟁대로 또 상처를 남기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고통과 생의 실질적인 단절이 없다는 점에서 전쟁과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10/03/02 05:43
앗 오랜만에 뵙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면 전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널리 퍼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전쟁은 부정적이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많았던 것 같아요. 법가도 묵가도 그랬던 듯 합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요즘 조심스럽게 가설 하나를 품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解明 at 2010/03/01 00:27
책장에 꽂아놓은 『도덕경』과 『묵자』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Commented by 김태 at 2010/03/02 05:44
후기 묵가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만... 텍스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시대에 따라선<성서>를 전쟁의 텍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고보면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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