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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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서른다섯에 죽었군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가. 1892~1927
젊어서 자살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서른다섯이었네요.

지금 내 나이잖아요.

젊어서 죽은 것은 가여운 일이지만
서른다섯에 이미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니
그건 부럽습니다.


7. 그림

  그는 갑자기 - 그것은 실제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어느 서점 앞에 서서 고흐의 화집을 보고 있다가  돌연 그림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물론 그 화집은 사진집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사진집 속에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자연을 느꼈다.

  이처럼 그림에 대한 정열은 그의 시야를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뭇가지의 흔들림이나 여자의 풍만한 볼에 끊임없는 주의를 기울였다.

  비 내리는 어느 가을날 저녁, 그는 어느 교외의 육교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육교 맞은편 제방 아래에는 짐마차 한 대가 멈춰 있었다. 그는 그곳을 지나가면서, 누군가가 전에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굴까? - 그건 그 스스로에게 새삼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스물세 살, 그의 마음속에는 귀를 잘라낸 네덜란드인 한 사람이, 긴 파이프를 입에 물고 이 우울한 풍경화에 날카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36. 권태

  그는 어느 대학생과 함께 억새풀이 우거진 들판을 거닐고 있었다.

  "자네들은 아직도 왕성한 삶의 의욕을 가지고 있겠지?"
  "물론. 당신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데 나는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 창작 욕구는 갖고 있지만 말이야......"

  이 말은 그의 진심이었다. 그는 실제로 언제부터인가 생활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창작 욕구라 해도 역시 삶의 욕구겠지요."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억새풀이 우거진 들판은 어느 사이에 붉은 분화산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이 분화산에서 무엇인가 부러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무엇을 부러워하는지는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바보의 일생或阿呆の一生>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석륜 옮김)



다자이 오사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쿠타가와 역시
길지 않은 평생 동안
자살 강박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보통 전기작들이 많이 소개되지만
저는 이 사람 후기단편도(얼마 보진 못했지만)
좋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더 좋았죠.
혀에 닿은 면도날처럼 섬뜩한 맛이 있어서.

살아서 더 썼으면 좋았을텐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로 말하자면
요절해도 될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장수하면서
물량공세를 해볼 생각입니다.


by 김태 | 2009/12/17 03:45 | 글그림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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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zert at 2009/12/17 08:2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천재죠 ㅎㄷㄷ
Commented by 김태 at 2009/12/21 03:44
감기 탓에 덧글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6^^;; 아쿠타가와, 예민한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재능도 있고. 예술적 야심도 있고... 일찍 죽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12/17 08:31
이 사람이 아쿠타가와 상의 바로 그 사람이지요?

이 분 소설중에 "조선의 임진록 설화"(계월향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편이 하나 있었고 북조선으로 가서 한국전쟁중 실종된 김사량 역시 이 사람 관련 상과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12/21 03:46
김사량 아저씨가 받았다는 상이 아쿠타가와 상이었군요. 일본에서 상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국전쟁 때문에 김사량 아저씨 세대는 통째로 날아가버린 것 같습니다. 재능있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Earthy at 2009/12/17 10:38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간들을 보면 젊은 나이부터 자살을 인생을 클리어하는 어떤 편법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더군요. 게다가 예술지상주의자이기도 해서...
결국 실제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무려 조카에게 자기가 오늘밤에 죽는다고 말을 해놓고도...
쓰고 있던 글이 마무리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그게 마무리 될 때까지 글을 쓰고는,
다 쓴 날 새벽에 자살하죠. 흐음...;;;

어제까지 아쿠타가와로 졸업논문 쓰고, 오늘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머엉)
Commented by 김태 at 2009/12/21 03:50
아쿠타가와로 졸업논문을 쓰셨다니요, 부럽습니다. 저는 그냥 번역본 좀 읽고 이러는 거라서.. 찔리는데요. 6^^;;
Commented at 2009/12/17 11: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12/21 03:48
그분은 사상적 편향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부실해서 문제겠지요. 프로정신이 없어지신 것 같아요. 휴. 사상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지젝도 편향된 이야기를 즐겨 하지만, 아무도 지젝 책보면서 돈 아깝다고는 안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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