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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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지와 오뒷세우스의 공통점은? - 우리를 사로잡은 강력한 충동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대중적인 과학 교양서이지요. 여기
생명에 관한 그의 생각이 눈길을 끕니다. 생명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살아있
는 생명체는 왜 사는 걸까요? 그 의미는 뭐죠? -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생명
그 자체가 목적이고,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충분한 의미라는 겁니다.     .

물론 이 말은 시시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거창한 뭔가를
찾곤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의미에 대해서, 고상하고 거창한 해석을 덧붙
이고 싶어합니다.                                                                             .

353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생명은 정말 그런 걸까요? 빌 브라이슨은 가장 간단해 보이는 생명체
를 예로 들어, 생명 그 자체에 대해 숙고합니다. 위의 글에 바로 이어집니다 :

-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어하는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숲속의 바위에 붙어서 수십 년을 지내야만 한다면 절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의류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끼류는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낸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은 그저 존재하고 싶어할 뿐이다.



더 간단한 생명체, 해면은 어떨까요? 살아남고자 하는 해면의 강렬한 욕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다음 대목을 읽다가 처음 알았습니다.        .

요즘 가장 유명한 해면(스폰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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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해면을 체로 걸러서 세포들을 해체시킨 후에 다시 물 속에 던져 넣으면, 세포 조각들이 다시 모여들어서 스스로 다시 해면의 구조를 회복한다. 그런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더라도, 해면은 끈질기게 다시 모여든다. 인간은 물론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해면도 계속 존재하고 싶다는 충동에 압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끼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냅니다.  해면은 '끈질기게
다시 모여'듭니다. 이것은 생명의 힘 때문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입
니다. 거창한 업적이나 영원한 명성, 삐까번쩍한 공로가 없다고 하더라도.       .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죠.

아킬레우스의 엄마는 신. 아들에게 운명을 귀뜸해줍니다(천기누설!). 그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오래오래 살지만 평범 듣보잡으로
남는 길. 둘째, 일찍 죽지만 영원한 명성을 얻는 길. 아킬레우스는 2번을 택합니다.
그리고 저승에서 왕노릇을 하게 되지요(여기에 대해서는 저번 글 참조).             .

오뒷세우스는? 그런거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
니다, 단지 살기 위해서. 살아서 고향땅에 돌아가기 위해서.  엉뚱한 곳으로 표류하
더라도 '끈질기게 다시' 귀향길에 나섭니다. 그 목적은 뭔가요? 단지 살아 돌아가겠
다는 거. 살아남는다는 거.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 역시 생명이라는 충동
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끼처럼, 해면처럼. 그리고 저 역시 그러합니다.   .




by 김태 | 2009/10/14 09:35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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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10/14 09:38
흑역사는 아니지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작가가 오딧세우스 속편을 썼습니다. (무려 서사시!) 그 작품의 근본주제가 바로 생명이라는 충동이지요. 결국 마지막에는 남극으로 가서 일생을 마친다는 결말.
Commented by 김태 at 2009/10/14 09:45
안녕하세요^^! 고려원이 망한 다음 카잔차키스 전집이 사라져서 너무 안타까웠답니다. 몇몇 책들은 다시 구하고 싶어요... (옛날에 짝사랑하던 여학생한테 빌려주고 영영 돌려받지 못하였다는 흑역사가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정말 흑역사로군요.)
Commented by AvisRara at 2009/10/14 11:03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그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의지를 통해 영웅의 반열에 들게되니(원래부터 좀 잘나기도 했었지만^^;) 그 또한 재미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오그드루 자하드 at 2009/10/14 11:20
카잔차키스 전집은 열린책들에서 새로 나왔습니다. 돈만 있으시다면야....
Commented by 朴下史湯 at 2009/10/16 21:25
살아가는 이유같은건 어디에도 없지 말입니다. 그래서 이유없는 삶에 그리도 집착하면서 살려고 바둥거리는 건, 정말로 병신같지만 멋진거죠. 복귀 환영해요'ㅅ'
Commented at 2009/10/1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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