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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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의 얄궂은 탄식 -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



이전 글(클릭)에 이어씁니다. 역시 옛날이야기 읽듯 읽어주시면

감사^^. 삶과 죽음에 관한 글이라 주제가 좀 무거울지도 몰라요.

+

아킬레우스! 그는 탁월하고 용감하고 신분도 고귀하고 아름다웠고
기타 등등이었습니다. 어찌나 잘났는지, 여러 가지 잘난 점을 하나
하나 늘어놓기도 숨차네요, 아이고.                                      
.

희랍어로는 한 마디면 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아가토스(AGATHOS)’했다고 하면 돼요.
‘아가토스’라는 말이, 좀 골 때리는 말입니다. 잘났다, 착하다, 용감하다, 고귀하다,
집안이 잘 산다, 기타 등등입니다.  한국말로 '잘 나간다'라고 하는 말, 그 말 못지않게
넓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니체가 이야기했던 이른바 <귀족의 도덕>이라는 개념
은, 이 단어를 염두에 두면 이해하기 더 좋겠지요. 재주 있고 힘센 놈이(agathos) 고귀
한 귀족이 되고(agathos) 그럼 도덕적으로도 좋은(agathos) 거라는 이야기겠죠. 오늘
날의 우리로선 적응이 잘 안되는데, 니체가 말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점일 겁니다.)   .

-
(이틀 후 다시 글을 읽어보니, 아가토스agathos로는 조금 약하군요. 그 최상급인 아리스토스aristos
정도는 되어야 아킬레우스에 맞을 것 같습니다.^^ 뜻은, 그냥
잘 나간다가 아니라, 몹시 잘났다, 몹시 강하다,
몹시 용감하다 등, '몹시'를 붙여주시면 됩니다.)



잘 생긴 아킬레우스 얼굴.
우표로도 나온 적 있대요.


아무튼 그런 아킬레우스도 죽었습니다. - 이승에는 커다란 명예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알렉산데르 대왕이 무지하게 질투할 정도로 큰 명예였습니다.


저승에 가서도 한 자리 합니다.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한다네요.

알렉산데르대왕이 아킬레우스한테 제사를 드리는 그림이래요.
옛날 사람들의 '훌렁훌렁'도 오늘날 우리는 적응 안 되는군요.



그런데 시인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 위대한 저승의 왕 아킬레우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나요.

<   오뒷세이아 11권 489-491행   >
βουλοίμην κ᾽ ἐπάρουρος ἐὼν θητευέμεν ἄλλῳ,
ἀνδρὶ παρ᾽ ἀκλήρῳ, ᾧ μὴ βίοτος πολὺς εἴη,
ἢ πᾶσιν νεκύεσσι καταφθιμένοισιν ἀνάσσειν.

대충 이렇게 번역이 됩니다 :

-  모든 죽은 이들 사이에서 왕 노릇 하는 것보다는, 바라노니, (이승에서) 날품팔이
농사꾼이 되어 다른 양반 밑에서 (종살이)하는 게 차라리 나으리라. 비록 (날 부려먹
사람이) 땅도 없고 재산도 별로 없는 그런 (듣보잡)일지라도.                       .


그 잘난 아킬레우스마저도,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는 겁니다.
이승에서 웬 듣보잡 밑에 들어가 그 듣보잡만도 못한 삶을 살아갈지라도,
저승에서 두목 노릇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는군요.                        
.


+


호메로스의 이 구절에는 뭔가 뭉클한 것이 있습니다.   -  우리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겁니다.   호메로스가 자주 쓰는 단어로, 인간을
브로토스(brotos)라고,  신을 암브로토스(ambrotos)나 아타나토스(athanatos)라고
 합니다. 브로토스는 우리말로 '죽어야 하는 자'라는 뜻이고, 암브로토스와 아타나토
스는 '죽지 않는 자'란 뜻이라네요.  (부정의 접두어 'a'가 붙은 겁니다. 현대 영어에
normal의 반대말이 ab-normal인 것처럼요.)                                                   .

인간은, 아무리 잘난 인간도, 결국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은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일리아스>는 말하자면 남의 집안일 따위로(사랑과 전쟁!)
그런 귀한 목숨을 내던져가며 싸우는 이야기인 것이죠.  
.


창을 든 아킬레우스. 헥토르
를 공격하는 장면입니다.   .


+


근데 말이죠, 아킬레우스가 저승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죠?
누가 듣고 왔나요? 호메로스에 따르면, 저승까지 내려가 이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 이승에 말을 전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바로 오뒷세우스라는군요.


오뒷세우스 우표. 이 예쁜 그림들은 다음 사이트에서 왔어요.
http://www.mlahanas.de/Greeks/Mythology/Achilles.html

+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

호메로스의 세계에서는 둘다 영웅이지만,
아킬레우스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잘난 인간이었고
오뒷세우스는 어찌 되었든 살아 돌아가겠다는 인간입니다.


살아 남는다는 것 - 그것이, 오뒷세우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였다는 이야기를 앞으로 조금씩 적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이라는 것, 그것은, 요즘 저의 관심사이기도 하거든요.   .


by 김태 | 2009/10/12 06:14 | 고전어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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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째, 오래오래 살지만 평범 듣보잡으로남는 길. 둘째, 일찍 죽지만 영원한 명성을 얻는 길. 아킬레우스는 2번을 택합니다.그리고 저승에서 왕노릇을 하게 되지요(여기에 대해서는 저번 글 참조). .오뒷세우스는? ... more

Commented by 디오니 at 2009/10/12 12:15
오랜만에 글로 뵙는군요. 잘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
죽 이어질 내용이 매우 기대되네요. 그러고 보니 저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서 트로이로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아킬레우스가 죽을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자기는 끈질기게 살아남고
남은 사지로 밀어넣고..ㅋ
Commented by 김태 at 2009/10/13 04:58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미묘한 부분입니다.
오뒷세우스의 살려고 하는 의지는 참 감동적인 것인데, 정작 오뒷세우스의
주변에서 제 명에 죽는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내가 살려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될 수 있을 텐
데요, 물론 오뒷세우스는 거리낌 없이 자기가 사는 길을 택합니다. 이것 참
두고두고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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