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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22) -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 산더미 같은 황금



저번 주말에 실린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코너입니다. 제목 못 뽑고 그냥 보냈는데

한겨레 측에서 기막힌 제목을 뽑아주었습니다. 마음에 쏙드는 제목을 붙여주셨어요.


황금으로 꾀어 고통 떠넘기는 사회


마침 촛불 1주년과 용산참사 100일, 그리고 노동절에 맞추어 실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개발 들어간다면서요? 죽은 사람 얼마나 억울할까.”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은 용산을 지나가며 혀를 찼습니다. “말이 좋아 재개발이지, 결국 살던 사람은 나가야 되는 거 아니오? 다들 부자 될 것처럼 흥분하더니 속았지 뭐.”


        한동안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대박의 꿈’으로 들떴어요, 산더미 같은 금이라도 약속받은 것처럼. 그러나 모두 갑부가 될 수는 없었죠. 누군가 한몫 챙기면 누군가는 잃게 마련입니다.

       재개발이 시행될 때 몇 퍼센트의 사람은 삶터를 잃고 몇 퍼센트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합니다. FTA로 시장이 개방되면 몇 퍼센트의 사람은 일터를 잃고 그중 몇 퍼센트는 다시는 일거리를 얻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 ‘몇 퍼센트’ 역시 인간이란 사실을, 우리는 정말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도 애써 잊으려 하는 걸까요? 더군다나 그 ‘몇 퍼센트’ 가운데 바로 내가 들어갈 수도 있는데요.


        이웃의 손해가 다른 이웃의 이익이 되는 세상사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용이 될 수 없다’(세르펜스 니 에다트 세르펜템, 드라코 논 피에트, Serpens ni edat serpentem, draco non fiet)는 말이 있었대요. 이 라틴어 격언을 소개하며 에라스무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놀랄만한 성장은 결국 남을 희생시킨 결과이다. 귀족들의 재산도 그들이 잘해서 커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먹어 없앤 희생자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물고기나 짐승이 꼭 그러한데 이것들은 작은 동물을 살육함으로써 자신을 살찌운다. 이 말은 백성들의 욕지기가 담긴 격언이다.


        하이네는 <세상사>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많이 가진 자는 금방 또 / 더 많이 갖게 될 것이고 / 조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자는 /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의 슬픈 풍자는 계속됩니다. “땡전 한 닢 없이 당신이 빈털터리라면 / 아 그때는 무덤이나 파는 수밖에 / 이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는 이는 / 뭔가 가지고 있는 자들뿐이니까.” 하이네의 과장은 물론 지나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이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으니 속상할 따름입니다.


        다비드의 작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다시 그려봤습니다(산의 모습은 백제 산수문전에서 따왔습니다). 나폴레옹은 고생하여 산을 넘으면 영광이 찾아온다고 약속하며,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황제가 되고 그 형제들은 유럽의 제후가 되었지요. 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역시 황금빛 가득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겼어요. 그러나 정작 병사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끝없는 전쟁 뿐.


        오늘날은 산더미 같은 황금을 약속하며, 한편으로는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황금을 챙기는 사람과 고통을 지불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산더미 같은 금을 약속하다’(아우레오스 몬테스 폴리케리, Aureos montes polliceri)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고전학자 에라스무스가 문헌을 뒤져 보았더니, 얄궂게도 이 말은 원래 ‘산을 약속하다’는 말에서 나왔다는군요. “이 과장법은 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다만 산과 관련이 있다”나요. 우연이라기엔, 뭐랄까, 씁쓸하네요.





죽을 고생을 하며 산을 넘는 사람은 따로 있고, 황금을 챙기는 사람은 또 따로 있다는
내용을 쓰고 싶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용이 되지 않는다>란
격언과 <나폴레옹> 그림에 맞는 동양의 격언인. <일장공성만골고>를 인용하지 못했
다는 겁니다. 갑자기 이 말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한문 박사(정확히 말하자
면 박사과정입니다만)' 윤선생한테 물어봤는데 마감이 너무 급해서 일단 다루지 못했
습니다. 하이네의 시를 대신 넣었습니다. 나중에 글을 고칠 기회를 기약하며...        .


by 김태 | 2009/05/05 04:13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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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원래그런놈 at 2009/05/05 09:25
예성현들의 말... 과연 명언은 명언이라 지금 우리에게도 너무나 통하는 말이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5/07 00:44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용이 되지 못한다... 저 말은 상당히 와닿더라고요.
Commented by LackSuiVan at 2009/05/05 10:08
이런 상황에서 저는 조금 오래걸리더라도 최소한의 고통을 추구하는 쪽으로 가고싶어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5/07 00:45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권이 강조하는 속도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참 갑갑합니다. 개발독재 시대의 흔적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解明 at 2009/05/05 10:28
신문에서 그림 보면서 산은 왜 산수문전에 따오셨는지 궁금하더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5/07 00:46
아앗,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T_T ...사실대로 이실직고하자면... 산수문전이 너무 예뻐서 따왔습니다. 산 모양을 그린 어느 나라의 도안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5 10:38
잘 읽었습니다. :D
Commented by 김태 at 2009/05/07 01:37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LVP at 2009/05/05 12:58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수우족의 추장 故 레드클라우드(원주민식 본명은 까먹은지 오래)는 오클라호마에서 쫒겨나기 전에도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백인들은 우리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약속을 했다. 하지만 한가지 약속은 확실하게 지켰다. 그들은 우리의 땅을 빼앗겠다고 했고, 결국 그들은 우리의 땅을 빼앗았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재물이 외부에서 유입되지도 않고, 내부에서도 잘 돌지도 않는 한쿸에서 '부자되세염~' 이라는 말에 속으면 안되는 것이, 일단 자본주의의 법칙에서 말이 안되거든요. 저런 상태에서는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어딘가에선 손해를 보기 마련'이기 때문에,(아니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이 전국구로 사기질에 당하고도 정신못차리는 걸 보면...) 그리고 그 피해자는 항상 1%를 뺀 나머지 사람들이라는 역사적 진리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고대 로마의 공화정-제정기성립기(포에니전쟁부터 카이사르의 대권브이 촬영까지)처럼 파이가 너무 커져서 부스러기가 파이 한개급 정도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스페인의 아즈텍 금은방 습격사건이라는 대형사건사고를 일으켜 남의집 패물을 털어올 게 아닌 다음에야, '부자되세염'이라는 말은 명백한 사기행위요, 맘모니즘이 만연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물론 저는 경제에 관해선 허연 A4용지나 다름없고, 역사적 지식도 매우 짧은 편이라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마는, 저런 사기질이 눈에 보일 정도이면, 대체 라이칸슬로프의 구라는 얼마나 허술하길래 저같은 저랩의 인물에게도 감지가 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ㅅ-;;;;
Commented by 김태 at 2009/05/07 01:41
파이가 커진대도 문제입니다. 로마 이야기는 잘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재물이 외부에서 유입된다고는 해도, 화성에 가서 천연자원을 캐오지 않는 이상, 그 재물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빼앗아 오는 것일 가능성이 99%입니다. 잘 표현해주신 바 대로, '남의집 패물을 털어오는' 일이 되고 말겠죠.
최근 뉴스를 보니, 이라크 유전 사업에 끼어들려다가 참여를 못하게 되었다는군요. 복잡한 논점이기 때문에 이야기도 복잡해지지만,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맘모니즘'과 결합한다면, 우리도 제국주의의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 같네요.
이러니저러니, 이명박의 구라는 참 성의없고 허술하지요. 그나마 기만적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는지요.6^^;;;
Commented by 기우 at 2009/05/05 14:30
다 잘 살면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리면서 뻐길 수가 없죠. 달리 말하면 부자 하나 있으려면 가난뱅이는 100명은 있어야 할 거라는 것.
Commented by 김태 at 2009/05/07 02:05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사회전반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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