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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13) - 닮은 것은 닮은 것을 기쁘게 한다




이건 결혼식 이틀 후부터 쓰기 시작해서 마감했던 글입니다. 신문사에 보낼 때에는
길이 때문에 뒷부분을 (울며 겨자먹기로) 살짝 줄였습니다. 여기는 원래 버전을 올
립니다. 검붉은 색으로 표시한 문장이 신문연재와 다른 부분입니다. MB 일당에 대
한 이야기도 마지막 부분에 더 적나라하게 나오고요.                                       .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유유상종의 위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9906.html
(사진은... T_T ...실물은 약간 더 정상인으로 보입니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기쁘게 한다(Simile gaudet simili, 시밀레 가우데트 시밀리)’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건 취향이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면 기뻐한다는 뜻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나르키소스의 신화가 여기 잘 들어맞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몹시 아름다운 소년이었습니다. 어찌나 잘 생겼던지,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군요. 프로이트는 이 신화를 자기 이론에 맞추어, 스스로를 사랑하는 성향을 나르시시즘이라 불렀습니다. 나르키소스를 영어식으로['프랑스식으로'라고 담당기자님이 교정해주셨습니다] 읽으면 나르시스가 되지요.


        살바도르 달리도 이 신화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나르키소스의 변용>이란 작품을 그렸습니다(다양한 해석이야말로 문화를 살지게 하는 힘이지요). 그림 왼쪽에는 정신을 잃고 수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머리 묶은 소년 나르키소스가 있고, 오른쪽에는 수선화를 든 손이 있습니다. 재치 있는 달리는 두 모습을 서로 꼭 닮게 그렸어요. 여기에 에라스무스를 덧붙여 그려보았습니다. ‘완전한 유사성이 있는 곳에 가장 격정적인 사랑이 존재한다는 말이 진정 나르키소스의 신화에 담긴 뜻’이라고 에라스무스는 적고 있지요.


원래 그림은 이 링크에... http://www.abcgallery.com/D/dali/dali49.html


        자기와 닮은 이를 보고 기뻐하는 마음, 닮은 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능이 원래 그렇듯이, 이 마음에는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미덕에 있어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과 어울린다’고 말했다지만, 에라스무스는 ‘이 말은 악덕의 경우에 더욱 확연하다’면서 걱정합니다. 사기꾼이 사기꾼과 어울리고 독재자가 독재자와 죽이 맞는 꼴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닮은 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비뚤어지면 자신과 다른 이(타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파시스트들이 보기에 다양성과 불일치는 ‘배반’입니다. 스파이 소설의 걸작 <르윈터 망명>에서 소련 지식인 자이체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완전히 서로 닮은 것은 무덤에 들어간 경우 말고는 없다고 스딸린이 말했다지요. 스딸린은 잘 알고 있었을 게요. 온 세상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무덤으로 보냈으니까.”


+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얼핏 보기에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나르키소스의 신화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자기 모습을 사랑한 것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자기와 꼭 닮은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저주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던 걸까요. 다양한 의견이 없으면 사회는 병이 듭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파시즘도 철권통치도 속은 곪아 있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카토 슈이치는 서경식과의 대담에서, ‘소수의견이 없는 사회’는 ‘방향전환을 할 수 없어’ 결국 ‘비탈길을 구르는 돌처럼’ 파국으로 치닫는다고 지적합니다.


+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서로 꼭 닮은 자들의 과두정이 출범한지 어언 1년. 재산 액수가 다른 서민들의 삶에는 무관심한 채,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하기 위해 저들은 공권력을 유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하던 한국사회의 다양성이 상처 입을까봐 두렵네요. 불행 중 다행이랄까, 저들의 지독한 무능력을 보며 안도하는 것은 나뿐일까요.






by 김태 | 2009/03/24 03:51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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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opord at 2009/03/24 15:33
글 잘 읽었습니다. 안광이 역시 범상치 않으신데요? (농담입니다.ㅎㅎ;;)

다름을 포용하기란 그럼에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요즘입니다. 앞서 사도 바울-에라스무스-볼테르에 대한 말씀과 연관되는 이야기겠지요. 결국 포용이란 그렇게 포용해주는 사람의 강함을 증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전 아직 멀었네요.OTL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6 09:46
아... 저 사진 때문에 '변태 지식인' 같다느니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곤 합니다만... 한겨레측에 있는 인터뷰 사진 중에는 저 사진이 제일 나은 것이라서요(흐흑). 사진 부분은 잊어주세요. 종이신문에는 그나마 엄지손톱만하게 나와서 다행입니다.

다름을 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저야말로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에는 가끔, 내가 MB를 싫어하는 이유가, MB측 인물들과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출신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니까요. (물론, 아직까지는,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야...'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합니다.)

지식인의 존재근거를 '다름'에서 찾는 분 가운데, 서경식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정체성은,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타자이고, 한국에서도 타자이며, 형들이 박정희 시대 대표적인 양심수였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그렇습니다. 닮고 싶긴 한데, 도저히 제 공력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26 20:00
제가 요즘 the idea of Latin America란 책을 읽습니다. 그 책에 나온 말이 생각나네요.

"'인종주의는 너희들은 흑인이고 황인종이라서 나보다 열등해.'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하고 다르니까 나보다 열등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요. 아나키스트 사회를 그린 SF소설, '빼앗긴 자들'을 보면 그 아나키스트 사회에서 정부가 있는 사회에 온 주인공 셰백이 모든 사물과 생각에 우열을 매기는 버릇을 신기해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음. 이 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권력 문제인 듯 합니다. 제 생각도 꽤 꼬여 있어서 풀어 말하기 어렵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7 18:57
좋은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유명한 명제가,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거부한다'는 것인데요, 서경식 선생님 글에 여기에 관한 좋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차이와 차별 이야기하다보니, 서경식 선생님이 자주 인용될 수 밖에 없네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므로 차이는 인정해야 하고, 그러나 차이와 차별은 나누어야 하고, 차별에는 맞서 싸워야 하고,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기 위해 인문교양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조만간 포스팅을 하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Drizite at 2009/04/14 01:38
음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개인을 무시하는 사람들보면 할말이 없더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4/14 03:13
한국사회처럼 논의구조가 왜곡이 되어 있는 곳에선, 개인의 입장을 가져가면서 오해받지 않기가 어렵더라고요. 종종 저도 당하는데, '이 쳐죽일 좌빨 간첩놈아'라면서 색깔론으로 당하는 건 뭐 이젠 넌더리가 날 정도이고, 가끔은 '너 같은 놈 잘 안다, 이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앞잡이놈아'라는 말까지도 듣습니다.
Commented by Drizite at 2009/04/14 14:10
한술 더떠서 잘못을 지적하면 감정론에 치우쳤다느니 하면서
물타기 하는거 보면 한숨만 픽픽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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