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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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12) - 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지난 해 국방부 금서 사건이 있었죠. 저를 포함하여 많은 작가님들이 '왜 우리 책은 불온서적

리스트에서 뺐느냐'며 투덜대기도 하였습니다만...링크: http://kimtae.egloos.com/1917461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 금서 사건에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 중 2명을 군에서 파면했군요. 역시
2MB의 졸개들(제 표현이 아닙니다)은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2MB를 닮아서 그런가 보죠.

돌아온 '그때그사람'들. 조중동의 갈곳없는 칼럼니스트들. 전여옥 신지호 등 거기서거기인 분
들. 그들은 대놓고 불관용을 주장하고있습니다. 나치처럼, 네오나치처럼, 홍위병처럼. 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관용과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

작년 결혼식하기 직전,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연재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 앞부분은 관용
을 주장했던 사상가, 특히 성 바울과 에라스무스와 볼테르를 언급합니다. 글 뒷부분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요, 성 바울도 에라스무스도 볼테르도 물러서지않는 싸움꾼이었음을 상
기합니다. 사상의 자유와 진정한 관용을 지키기 위해, 때로 우리는 싸워야합니다. 간단치않은
문제입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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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님의 지적을 받고 보니 '세계종교'라는 말이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것 같아,
'보편종교'라는 표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무장선교'에 대해
저야 물론 부정적인 입장입니다만.. 음, 그러고보니 고대사에서 '세계종교'니 '세
계제국'이니 하는 말도 '지중해세계'를 전제하고있으니, 어찌 보면 유럽중심주의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지중해세계엔 일부 아시아와 일부 아프리카도 포함
됩니다만, 아무래도 유럽위주의 관점이 반영되긴 했겠죠. 아 복잡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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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로마의 희극시인 테렌티우스가 이런 말을 했다죠. “Quot homines, tot sententiae(쿠오트 호미네스 토트 센텐티아이, 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는 누구나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탄식합니다. 이렇듯 다른 의견 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라스무스는 관용의 미덕을 제안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공동체마다 풍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역설했지요. 이 관용의 정신 덕분에 예수 운동은 (유대교의 일개 종파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교라는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이 관용의 정신 덕분에 예수 운동은 (특정 민족에게만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라는 보편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고전학자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 당시의 종교 갈등을 한탄하였습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이 만약 바울의 넉넉함을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하찮은 문제로 이렇게까지 싸우고 갈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그저 잊고 지내도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종교개혁’이란 지적 운동은 ‘종교전쟁’이란 권력자들의 폭력으로 변질됐습니다. 훗날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복음서에도 나오지 않는 사소한 내용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원인”이라며 개탄했다지요. 그러나 오늘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차이’ 때문에 죽고 죽이고 있으니, 사도 바울이 안다면 얼마나 당황할까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네 명의 사도>를 고쳐 그려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림 오른쪽에 큰 책과 칼을 들고 머리 벗겨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전승에 따라 바울은 대머리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랑말랑한 사람이었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발견되면 어디라도 찾아가 말과 글로 끝장토론을 벌였고, 교회의 대선배인 베드로(그림 왼쪽에 열쇠를 들고 있는 사도입니다)마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면박을 주었습니다.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역시 사도 바울을 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위해 용감히 싸운 혁명적인 투사로 해석해냈지요.


에라스무스 역시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비위도 약하고 건강도 나빠, 싸움에 휘말리는 걸 무척 싫어했지만, 잘못된 일을 보면 신랄한 독설을 날렸고 싸워야 할 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말년의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의 전기를 쓰며 히틀러에 대한 스스로의 분노와 절망을 달랬다고 합니다.


부조리에 싸움을 걸지 않고 휩쓸려 가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더 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한다면 관용이란 덕목은 진작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불관용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회피일 뿐입니다. 권력자가 사상을 통제하고 학생들에게 편향된 의식을 주입하는 시대에는, 가진 자들의 횡포가 시장 자유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시대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것만이 관용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요.





by 김태 | 2009/03/20 01:19 | 고전어 | 트랙백(1) | 핑백(2)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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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책벌레의 책 이야기 at 2010/09/03 17:58

제목 : 싸움꾼 바울
에라스무스(12) - 사람 수 만큼 다른 생각 내가 제일 존경하는 기독교 성인은 바울이다. 성공회는 사도신조의 성도와 거룩한 보편적 교회의 상통 교의에 근거하여, 잉글랜드 종교개혁이전부터 성인들을 수호성인으로 공경하는 전통이 있다. 물론 존 웨슬리 사제, 로마 가톨릭 순교자 토머스 모어, 성공회 순교자 토머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 개신교의 양심 마틴 루터 킹 목사같은 분들도 교회력에 수호성인으로 들어간다.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들중에 ......more

Linked at cat's bluse - 시시.. at 2009/03/30 18:04

... 에서 알게된 "악! 법이라고?" 이거 샀다고 블로그에 글쓰면 혹시 어디어디에서 전화오는거 아닐까..하고 사진 찍으면서 실소를. (작가님들도 이거 왜 금서목록에 안들어갔냐는 농담을 하셨다고 하네요. ^^;) 미디어에서 감췄던 많은 법들의 실체가 자세하고 알기 쉽게 [만화] 로 그려져 있습니다. 학교 다닐때 ... more

Linked at 불평불만 : 자기반성 : MB.. at 2009/04/03 12:22

... 종교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다른 종교보다 심한 경우도 많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두 번째 입장에 대해서는, 기우님의 비판도 있으셨고(http://kimtae.egloos.com/2324812에서 기우님의 비판에 대해 대체로 동의합니다), 또 최근 교황 아저씨도 말썽이 많으신 모양이니(다음 포스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kap ... more

Commented by LVP at 2009/03/20 01:54
역사신문이라는 3권짜리 기초역사서(?)의 2권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 가상인터뷰에서였던가?? 기억이 맞다면 이런 내용이 나왔지요

Q (기자) : 코시모 씨의 저택에는 성서 말고도 다른 책(개인적으로는 아마 아랍권에서 번역한 그리스/로마 고전이나 기타 인문주의 서적일 가능성이 높은 걸로 봄)도 많던데, 교회에서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A (코시모 데 메디치) : 식탁에 고기만 올라가면 얼마나 단조롭습니까? 야채나 향신료도 들어가야 식탁이 풍성하지요. 재료가 다양하면, 보기만 해도 흐뭇하덥디다.



※오늘의 결론 : 승리의 메디치!! (?)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1:42
제 기억으론 역사신문은 권수가 더 많았고 한국사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권 짜리고 메디치가 나왔다면 세계사신문이었을 겁니다. 확실히 코시모 때는
메디치가 관용적인 면이 있었죠.^^

※ 제가 본 저 '신문'류의 책 중 가장 재미있던 건 '삼국지 신문' 3권짜리였습니다.
그거 의외로 잘 된 책이라서...
Commented by LVP at 2009/03/21 14:15
아..이제서야 생각났습니다...역사신문은 한국사 6권이고, 세계사신문은 세계사 관련 3권짜리였지요..
(출판사도 같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암튼 지금 한국은 16세기의 어수선한 이탈리아만도 못한 그......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21:12
이탈리아도 그때는 좋았지만... 무솔리니를 거쳐 베를루스코니라니,
이탈리아 사람들도 지금 참 갑갑할 겁니다.
Commented by 朴下史湯 at 2009/03/20 22:54
무조건 비폭력 해야 됩니다. 그래야 뭐가 문젠지 비겁한 개량주의자들도 알게 되겠죠.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1:43
아. 비폭력이 필요한 이유 몇 가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를 새로 알려주시는군요.
이런 지점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21 00:48
바울이 남긴 여러 편지가 노예제도 옹호에 여성 인권 무시로 악명 높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터라(잘못 들은 걸라나요?), 관용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바울을 보기로 드시니까 꽤 얼떨떨한데요... 제 생각이지만 관용을 이야기할 때 굳이 바울이나 에라스무스나 그런 사람의 말을 빌어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만화 그리신 분이 그리스도교가 관용 정신으로 세계에 퍼졌다고 하시니 놀랍습니다...그리스도교를 세상에 퍼뜨린 건 칼과 피입니다. 우선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지배종교가 된 것도 기독교가 국가종교가 되면서 불관용을 국시로 삼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 이름난 인도주의자 라스 카사스나 아메리카 원주민을 지켰다는 예수회 수사들도 바로 그 잔인한 에스파냐 정복자들과 공생하는 사이였다는 것 잊으면 안 됩니다. 제가 연구하는 한 아메리카 부족은 평화 선교할 때는 거의 조금도 그리스도교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군사 정복으로 죽은 뒤에야 그리스도교에 기울기 시작하죠. 그리고 전쟁을 시작하기 전 그리스도교 '인도주의자'들은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개종해야 하지만, 전쟁은 하지 말자' 이럽니다. 말로만. 그리고 전쟁이 나자 죽고 다친 사람들을 보호해준다면서 개종자를 늘려가죠. 선교사와 정복자가 말로만 싸우면서 서로 돕는 이 상승작용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21 01:19
기독교가 정복 활동으로 들어간 곳에서...기독교 성직자들은 인권보호 활동권을 독점하고 전통종교를 미신, 야만, 악마 숭배로 몰아붙여 몰아냅니다. 그리고 정복자들은 기독교 성직자는 어느 정도 존중하지만, '야만인의 무당'은 무시하거나 경멸하므로, 억압받는 사람으로서는 기독교 성직자한테 도와달라는 쪽이 여러 모로 더 낫습니다. 옛날에 가톨릭 신부였던 이반 일리히는 (저하고 같은 까닭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가톨릭을 대놓고 문화제국주의라고 비판하다 교회에서 쫓겨났죠.
로마에서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나 테오도시우스 전에도 널리 퍼져 있지 않았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메시아 종교는 기독교 말고도 마니교나 미트라교 같은 게 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단'을 국가주도로 없애면서 현대 가톨릭의 기초가 놓여가는 거, 아시죠? 에라스무스나 저런 사람이 관용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기독교 안에서 관용을 이야기하는 거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백인 지배층이 에스파냐 지배층을 밀어내고 '독립'을 한 뒤 '종교 자유'를 이야기했지만, 원주민 '전통종교'는 그 자들 눈에 '종교'가 아니라 '미신'이었기 때문에 관용 같은 건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김태 님. 너그러움, 슬기로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같은 것은 '바울이나 에라스무스 (처럼 유명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더라', '~~교가 그렇게 너그러워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어라'같은 '권위'를 들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무엇이 옳은가?' 문제에서 '영웅'(역사가가 만들어낸 가짜 영웅일 수도 있습니다)들의 이름을 읊조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에라스무스나 바울이 정 반대로 이야기했다 하더라도 관용은 중요한 것, 아시지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1:50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신 부분들은 사실인데요, 제가 바울이나 에라스무스의 기독교적 권위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하려던 것은 아니라서, 약간 적어보겠습니다.
1. 라틴아메리카 문제에 대해 지적하신 부분은 맞습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톨릭이 저지른 짓은, 그 (시간적 공간적) 규모나 그 질에 있어서, 나치가 유럽에서 한 짓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사실 행위의 동기도 같지요. 자기들의 사상을 강요하고, 원주민을 죽인 후 정복자가 가서 생활할 '거주공간'을 만들려고 했으니까요. 콜럼버스는 원체 나쁜 놈이고, 피사로와 코르테스는 더 나쁜 놈이고, 엄청 착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라스 카사스조차 흑인 문제에 대해 요즘 다시 나타나면 명함도 못 내밀겠죠.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1:51

2. 라틴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도, 구교 신교의 미친 짓을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한 해악이 됩니다. 나치와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일이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만 나쁜 놈으로 되어 있는 현실은, 스벤 린드크비스트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 역시 유럽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은 관용에 있다는 주장을 계속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십자군 이야기>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배치되지 않는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1:55
4. <십자군이야기>에서 제가 드리려던 말씀은, 이슬람의 이름을 걸고 저질러진 몇몇 범죄에 대해, 이슬람의 가르침이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 자체는, (꾸란과 하디스의 몇몇 구절을 제외한다면) 관용의 정신을 가진 것으로 재해석 할 수 있고, 그렇게 본다면 과거의 정복과 현재의 몇몇 테러는, 비록 이슬람의 이름을 걸고 있더라도 이슬람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다만 마찬가지 이야기가 기독교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00
5. 기독교 자체는(그리고 모든 그럴듯한 종교는) 관용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민수기나 마카베오 등 몇몇 경전의 몇몇 부분은 말할 나위없이 편협하고 폭력적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보아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기독교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 재구성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정복의 역사나 얼마전 부시의 뻘짓, 그리고 지금 2MB와 소망교회 (일부) 인사들의 전횡 따위는, 종교의 역사 바깥으로 축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03
6. 저는 이러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해야 적어도 '종교의 이름을 걸고' 자기들의 살육을 정당화시키는 이상한 자들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원래 <십자군이야기> 3권이나 4권 인트로에서 예수와 바울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려던 참이었는데(출간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찬양하려는 게 아니라, 기독교도 이슬람도 제대로 바로 세우자는 제안입니다.^^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21 01:57
제가 '십자군 이야기'그리신 분이...라고 한 것은...<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관용에 있다>보다, <관용의 정신 덕분에 예수 운동은 (유대교의 일개 종파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교라는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때문에 드린 말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가 관용으로 세계종교가 되었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제가 말투가 많이 무례했는데, 너무 화내지 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09
a. 아... 세계종교라는 말에 문제가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기본적으로 '세계종교'의 세계란 말은, 지중해세계를 전제로 하는 말이라서요, 기독교, 이슬람, 미트라교, 모두 세계종교에 들어갑니다. (유대교도 세계종교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말 자체가 좀 유럽중심주의의 여지가 있긴 하군요. 좋은 지적이십니다.
b. 만일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를 포함해서 '세계'의 종교가 되는 과정을 말씀드린다면, 관용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역사입니다.
c. 가톨릭에서는 이 피의 역사를 사과한다고 했는데, 글쎄요, 말 한 마디 한 것으로 신은 용서하실지 모르지만 인간의 용서를 받으려면 노력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노력이 뭔가 나와줘야겠지요(그런데 하필 지금 교황이... 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양반입니다).
d.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라는 것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고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14
물론 '백인들이 천국에 있다면 나는 천국에 갈 생각없다'고 말하며 죽었던 추장의 유명한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기독교 전파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입장에서는 기독교를 제대로 재구성하고 말 의욕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워낙 정이 떨어져 버려서요.
그러나 <십자군이야기>에서 제가 지지해야 했던 입장은(지금도 지지합니다만), 알 카에다와 후세인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라는 가르침 자체는 관용에 근거한 것이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석이 기독교에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의 기획은 <십자군이야기> 1권에서 이슬람에 대한 불관용을 논박하고, 2권에서 이슬람 이전의 역사를 보고, 3권에서 이슬람의 발생, 4권과 5권에서 모세와 예수, 바울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책도 안 내놓으면서 말만 많아서 늘 죄송하지만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16
그리고 바울과 에라스무스에 대한 부분은...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른 기회에 말씀 나누었으면 합니다. 노예와 여성에 대한 바울의 입장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특히 더 복잡할 것 같습니다. 님께서 지적하신 부분 가운데 어떤 부분은 동의하고 어떤 부분은 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에라스무스 같은 경우에는 종교개혁에 대해 (좋은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접근한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 잘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좀 나이브했던 거지요. 교회의 권위로 먹고 살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고요. 다만 에라스무스의 여성관은 좀 문제가 됩니다. 이것도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6^^;;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21 02:14
옛날에 군대에서 교회에 다녔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에는 종교행사 시설이 기독교회 밖에 없어서 그 '구원의 권리'를 독점하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 한 목사가 이런 설교를 하더라구요. 바르게 살자. 바르게 살지 않으면 리어카 밖에 몰 수 없다. 얼핏 참 착하게 살라는 말로만 들리는 그 설교에 전 발끈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리어카를 끄시거든요. 그 목사는 참 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 자신도 모르게 부자를 높이고 가난한 사람을 깔아뭉개고 있었습니다.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관용 때문이라는 이야기도...관용을 강조하시는 것은 좋지만 '세계종교'가 된 것이 '일개 유대 종파'로 남은 것보다 나은 것이라는 뜻을 품은 것으로 들려서요. 제가
아까 순간 발끈한 게 옛날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인 듯 합니다.

바르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바르게 사는 것은 바르게 사는 것 자체로 좋은 것이다는 이야기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교는 관용의 종교이고 아직도 작은 교파지만 그래도 관용이 있기에 아름답다..."이런 이야기가 더 좋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19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목사양반은 두들겨 패서 교회 밖으로 내쫓아야 합니다. (비폭력을 지켜야하니 두들겨 패면 안되나요. 이럴 때는 비폭력을 지키지 않기가 힘들어져서요.)

저 부분은 조금 해명이 필요합니다. 세계종교로 발전했다는 것은, 저기서 '전세계 몇 %가 신봉하는 잘 나가는 종교' 따위의 뜻은 아니고요, 그 내적논리에 대한 겁니다. 이에 관해서는 교회사에서 중요한 바울과 베드로의 논쟁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23
1. 좀 이야기가 길어지는데요, 저기서 '세계종교로 발전했다'는 것은, 내적 논리에 있어서 '보편종교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보편종교라는 말이 자칫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서 세계종교라는 말을 썼는데, 그게 더 이상해졌군요.6^^;

2. 쉽게 (거칠게) 말씀드리자면, (후세 사람들의 해석에 따르면) 베드로 측의 입장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만 제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재구성됩니다. 반면 바울의 입장은, '유대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인 것이었다고 하죠.

3. 유대교도 같은 이유에서 세계종교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21 02:19
퀘이커인가, 쉐이커인가 기독교의 한 교파는 관용이 넘쳐나서 봉사활동을 해도 자기 종교를 안 밝히는 게 미덕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신도 수도 적고 앞으로 늘어날 기미도 잘 안 보인다지만, 전 그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28
퀘이커는 의외로 큰 종파입니다. 비타협적인 면이 매력이지요.^^ 존경스러운 부분도 있는데, 배타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아미쉬처럼 되기도 하고요...
퀘이커가 미국에 건너가게 된 사연이 재밌습니다. 제가 알기론, 퀘이커는 신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고 생각해서, 높은 사람 앞에서 존댓말을 안 써준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귀족하고 왕이 퀘이커에게 반말을 듣다가 앙심을 품어서, 퀘이커들이 왕도 귀족도 없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02:39
건설적인 비판과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을 나중에 좀 고쳐야 될 것 같아요. 분명히 '기독교 믿으면 잘 살게 된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3/21 12:05
1.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쏜다 -_-;;라는 말이 있듯이 기독교를 이념적으로 비난하는 분들이 대부분의 경우 "바울"을 드는 경우가 많지요. 역설적으로 바울이 당대 제자들중에서는 가방끈도 제일 길고 -_-;;; 로마 시민권도 있고-사도 행전에 보면 이런 시민권을 빌미로 재판 연기가 인민재판을 피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지극히 국제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유대의 지방 종교(당대에는 이런 사이비에 가까운 지방 종교가 많았습니다)화 되기 쉬웠던 기독교가 이념적으로 안정되고 로마에 퍼질수 있었던건 바울의 영향이 큽니다

2. 이건 "바울이 강제적으로 강요"했다는 것보다는 그의 손에서 단순한 이적을 행하는 가르침에서 합리적 이성적인 정교한 이론화 되었다는 거지요. 몇편은 분명히 위작일 가능성이 있지만 사복음서가 아닌 다른 신약의 경전이 대부분 바울의 "서간집" 을 빙자한 "이념 논쟁"이라는 점이 사실 이걸 뒷바침합니다. 다시 말해 당대의 로마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합리적 사고방식과 어느 정도는 지금의 기준으로 편향된 시각이 바울에게는 그대로 있었고 그것이 적어도 "초기 기독교"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을 가볍게 보거나 "바울이 이런 저런 말을 했으니 기독교가~"라고 하는 건 이야기를 너무 좁은 의미에서보는 거지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3/21 12:08
3. "부"의 개념과 복음의 개념은 사실 캘빈의 종교 개혁에서 그대로 따온게 많습니다 지금은 좀 위세가 떨어졌지만 맑스 베버가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지요.

4. 퀘이커 교도는 미국 근현대사에서 유명한 사건들에 자주 나옵니다. 흑인 노예 해방이나 베트남전 참전 거부 운동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퀘이커에 대한 몇몇의 전설은 "몰몬교가 음란 파티를 연다" --;;는 식의 왜곡도 많지요. 참고로 한국에서 퀘이커로 유명한 분이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함석헌" 선생이지요. 함선생보다 덜 하거나 소인배 같은 분들도 인터넷때문에 뜨는 세태에 의외로 함석헌옹의 이름을 모르는 분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긴 합니다.(하기야 70년대 괴작 "웬일인가 함석헌"-무려 중앙정보부에서 출판한- 같은 음해성 서적도 돌긴합니다만)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21 21:22
3. 에라스무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칼뱅의 도그마와 싸웠다는 점입니다.^^
4. (1) 몰몬에 대한 편견은... 역시 주홍색 연구의 코난 도일이 으뜸이겠지요.^^ (마크 트웨인조차도 몰몬에 대한 마타도어를 받아들이고 있어서 약간 놀라긴 했습니다.)

(2) 함석헌 선생에 대해서는 "거짓예언자"(아마 이 제목이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수상한 괴작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엄청나게 아슷흐랄하더군요... 함석헌 선생의 먼 조카를 자처하는 사람이 쓴 책인데, 책 쓴 분이 좀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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