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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과 두서 없는 예술론



이런 짓 그만둬야지...하다가 너무 댓글이 재밌기도 하고, 또 생각할

거리도 있어서 올립니다. 배우 변우민과 극중인물 정교빈을, 실수로
또는 고의로 혼동하는 사례는 예술론의 오래된 문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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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는 그냥 제가 생각을 정리하려고 적어본 겁니다. 나중에
더 읽을만하게 다듬어 다시 올려야겠습니다. 내용이 아직 성기네요.

(1) 플라톤<국가><이온> 등의 대화편에서 서사시와 비극(드라마)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현실과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플라톤이 보기에 철학은 엄밀한 지식을 주기 때문에 우리를 행복
하게 만들 것이고 서사시와 비극은 잘못된 지식을 줄수 있기에 불행하게 만
들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글쎄요?!                                                       .

(2)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순박한 마꼰도 마을에
극장이 들어온 이야기를 다룹니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슬픈영화를
보고 마꼰도 마을의 주민들은 슬퍼한 나머지 주인공 청년의 추모행사까지
치러줍니다. 그런데 다음영화에서 주인공이 살아서 다시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은 당황합니다. '속았구나!' 분개한 주민들이 극장을 때려부수
는 바람에, 마꼰도 마을에서 영화관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3) 백기완 선생의 수필 가운데 하나는 해방공간에서 있던 어떤 사건을 다
루고 있습니다. 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친일파 순사역을 했는데 너무나 리
얼하게 연기한 나머지, 극을 보던 관중이 분노하여 무대로 뛰어 올라가 배
우를 두들겨 팼다고 합니다. 아직 어린 백선생은 나중에 이 배우가 억울했
는지 아팠는지 훌쩍훌쩍 우는 장면을 인상깊게 기억한다고 썼습니다.     .

(4)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엑시스텐즈>는, 게임과 현실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더 가벼운 영화로는 피어스 브로
스넌이 나왔던 <론머맨>이 있고, 더 파고든 영화로는 <매트릭스> 시리즈가
있겠죠.                                                                                          .

(5) 진중권 선생은, <매트릭스> 영화에서 네오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이 보드
리야르의<시뮬라끄르와 시뮬라시옹>임을 지적합니다. 현실과 가상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오래된 철학적 주제입니다. '데까르뜨의 악령'이라는 개
념이 있습니다. 만일 악령이 우리를 속여서 감각적경험을 그대로 재현해 보인
다면 우리는 그것이 현실인지 가상세계인지 구별할수 없으리라고 데까르뜨는
말합니다. 사실 꿈 속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지 않습니까?                .

(6) 보르헤스의 단편 <아베로에스의 추적>은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아베로에
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에 있어서 사상 최고의 주석가였지요. 그러나 그
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비극(드라마)가 뭔지 몰랐던 겁니다. 그
래서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엉뚱한 주석을 달게 됩니다(실제로 아
베로에스가 뻘주석을 달았는지 저는 모릅니다만 아마 보르헤스는 읽고서 그런
이야기를 쓴 거겠지요?). 드라마가 무엇인가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추적'은 실
패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몇 개
들고서 스스로 칼을 든 기사라고 우긴다며 비웃고 맙니다.                          .

(7) 플라톤이 <국가>에서 비극과 서사시를 공격한 데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가 <시학>에서 비극(드라마)와 서사시를 복권시켰다고 이야기됩니다. 정말 그
런지는 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만(이번 학기에 제 연구주제입니다), 아무튼 이
렇게 해서 이야기를 한 바퀴 돌려서 두서 없는 예술론을 다시 처음의 플라톤
로 돌렸군요. 뭐 그나저나 어찌됐든 아내의 유혹은 솔직히 재밌습니다.          .


by 김태 | 2009/03/14 01:02 | 고전어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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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진리의 길 at 2009/03/21 11:55

제목 : [심리학] &quot;왜 민사장은 건우와 은재의 결..
'막장 드라마'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여전히 인기 몰이 중인 드라마, 『아내의 유혹』. 오늘 집중하고자 하는 이슈는 그동안에 선량한 이미지를 구축함에도, 왠지 모르게 까칠하게 행동한(?) 복수의 화신, '민사장'(민현주)에 관련된 것이다. 드라마 속 민사장의 이미지는 '샤프'하다. 너무 샤프하다 못해, 심지어 '자식'들에게조차 그러하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건우와 소희(진짜)의 애틋한 사랑 싸움 앞에서 분노의 여신으로 돌변한 적이 있었......more

Commented by 책벌레 at 2009/03/14 03:09
제가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말 드라마와 영화를 깊게 몰두해서 볼 정도로 좋아하지요. 배우 윤여정씨가 장희빈에 출연했을때 연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음료수 선전이 항의가 심해서 중간에 취소되었을 정도였다더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16 02:17
윤여정님 이야기가 있었군요. 하기야 불륜 전문으로 나오는 남자 배우들이 참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3/14 04:13
1. 그러고 보니 "장미의 이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과 "희극론"에 대해서 장광설을 펼치던 -그리고 그게 중요한 복선이 된- 장님 수사가 보르헤스의 완벽한 패러디였지요

2. 대하사극에서 가상으로 만든 걸 가지고 "역사연구"나 강연하는 경우를 많이 봤으니까-그것도 교수가- 그렇게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_-;;

3. "인어아가씨"에서 아리영 아버지로 나온 김병기씨 같은 경우는 소싯적에 무려 "김정일"로 이름을 알렸지요. 80년대 드라마니까 당연히 개망나니 변태 연기를 펼치는데 그런 이유로 무려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관광객들에게 욕을 푸지게 먹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뭐 이 버젼은 김병기씨 뿐 아니라 북조선 오진우 원수역을 한 이치우씨 버젼으로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kbs 이산가족 찾기 운동때 여의도 광장에 차타고 가다가 이산가족들에게 "저기 김정일 간다"라는 말 듣고 쫓겨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4. 허준호는 그래도 좋은 역을 꽤 하지만 허준호의 아버지 고 허장강 선생은 좋은 역을 "드물게"했지요. 그래서 길을 가거나 촬영장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무진장 욕을 먹었다고 합니다.

5.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는 좀 능력이 떨어졌다-심지어는 태작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는 평을 듣지요. 크로넨버그가 만든 동일 주제의 걸작은 "비디오 드롬"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16 02:21
1. 에코 자신은 '보르헤스를 뭐 굳이 의도하고 썼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어때요, 그렇게 보이시나요?'라는 어투로 알쏭달쏭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더군요.^^
2. <20세기 그 인물사>라는 책을 보니, 소련에서는 에이젠쉬쩨인의 영화장면들을 잘라다가 1917년 혁명의 공식적인 사진으로 썼다고 하더라고요. 좀 이상한 방식의 선전 정책 같습니다.
3. 4. 허장강 선생 이야기는 허준호님이 종종 밝혀서 알고 있었지만, 김병기님이 이산가족들에게 쫓겨난 이야기는 몰랐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네요.
5. '비디오 드롬'이 있었네요. 깜빡 하고 있었습니다. '엑시스텐즈'는 먹다 남은 뼈다귀로 총을 조립하는 장면이 이상하게 뇌리에 박혀 있어서... 요즘도 닭고기 먹고 남은 뼈를 보면 저도 모르게 총을 조립해보게 됩니다. 아. 그러고보니 저부터가 가상과 현실을 구별 못하고 있더라는...
Commented by 기우 at 2009/03/15 10:58
이 글 읽으며, "왜 인종주의자 보르헤스를 인용하기를 다들 이렇게 좋아할까?"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니, 저도 '영감을 주는 작가 보르헤스'와 '인종주의자 보르헤스'를 구분해 생각하지 못하
나 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9/03/16 02:24
보르헤스 이야기할 때마다 그 양반이 정치적으로 곤란한 입장을 취했다는 부분이 걸리곤 합니다. 사실 '작가'와 그 '인간'을 완전히 구분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까닭도 없겠지요. 저도 보르헤스에 대해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당시 남미의 역사가 제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그렇겠지요. 기우님의 지적을 받고 나니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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