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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8) - 물고기보다 말 없이



한겨레에 연재하는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칼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글을 쓸 때 몇 가지 의도가 있었습니다 - (1) 2MB 욕을 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2) 산해
경과 마그리트를 나란히 놓고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3) 러브크
래프트
의 소설을 신문지면에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단편<다곤>을
언급했는데, 영화 <데이곤>과도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지면부족으로
그건 머나먼 미래의 일로 미루어봐야하겠네요. 아무튼 하고싶은대로
쓴 글이긴 한데 - 결국은 이 다음번 칼럼부터 다시 2MB 욕을 시작하
고 말았네요. 요즘은 뭘해도 전자동으로 '이게 다 MB때문이야'로 흐
르게 되어, 이것도 꽤 걱정이 되는 문제입니다.
                            .


 

영어에 ‘물고기처럼 말없는(as dumb as a fish)’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라틴어 격언 ‘물고기보다 더 말이 없다(magis mutus quam pisces, 마기스 무투스 쿠암 피스케스)’에서 왔다는군요. 그런데 물고기가 정말 조용하기만 할까요?

 

현자 피타고라스는 물고기들이 침묵의 미덕을 깨달은 존재라며, 제자들에게 생선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물박사 아리스토텔레스는 소리를 내는 수중생물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가시나 지느러미 따위를 비벼대는 것이라 주장했지요. 르네상스 인문학자 에라스뮈스(에라스무스)는 소리를 내는 물고기란 극소수의 예외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아주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소리를 내며 또 그걸로 의사소통까지 한다고 봅니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천재들도 모르는 것이 있네요.
 

어떤 지식과 경험들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영영 알 수 없습니다. 장자는 인간과 물고기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장자의 친구인 혜시 역시, 물고기의 속마음을 인간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했고요. 미국의 현대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박쥐는 눈 대신 초음파로 사물을 ‘본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은 박쥐의 경험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물고기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지식과 경험들은 한 때 알려졌다가도 망각 속으로 사라집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해안 곳곳은 민어 떼 울어대는 소리로 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짝짓기 철이 되면 민어들은 부레를 부풀려 “꽉, 꽉” 울음소리를 내거든요. 그러나 민어가 귀해진 요즘, 뭍에까지 울려 퍼진다던 민어 울음의 기억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잊혀진 지식들은 영원히 침묵합니다, ‘물고기보다 말없이.’

 

앎이란 인간의 으뜸가는 즐거움입니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죽음의 공포와 고통이 가시고 빛의 터널이 보이면서 죽어가는 이는 차츰 즐거워진다고 합니다. 가장 큰 즐거움의 단계를 그들은 ‘모든 것을 알게 된 기분’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렇다면 무지와 망각은 그 큰 즐거움을 앗아가는 고통이며, 학문은 그 고통을 쫓아내기 위한 몸부림일 겁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림 속 물고기 인간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가 상상한 것들입니다. 옛날 중국의 <산해경>에도 이와 비슷한 상상동물들이 소개되어 있어요. 서쪽 깊은 산에는 네발 달린 물고기 인어가 살고, 북쪽에는 닭발 달린 고기 초어가 살고 있다나요.
 

  한편 공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는 단편소설 <다곤>에서, 까마득한 옛날에는 무시무시한 물고기 종족이 물과 뭍을 지배했다고 합니다. 인류가 출현한 후 이들은 세상을 되찾을 날을 꿈꾸며 바다 속 깊은 곳에 숨어 지낸다는군요.
 

  가보지 못한 먼 산과 인류 이전의 먼 옛날, 그리고 갈 수 없는 깊은 바다 속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상상으로 그 빈 곳을 채우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요?



by 김태 | 2008/12/04 02:50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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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ackSuiVan at 2008/12/04 09:14
그런데 뭍과 뭍을 지배했다는것은 모든 땅을 지배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오타인가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04 10:20
폰트의 문제입니다. 잘 보시면 앞의 것은 ㅌ받침이 아니라 ㄹ받침입니다. 물(水)과 뭍(陸)입니다.
Commented by LVP at 2008/12/05 02:14
거참 생선이 싱싱(?)합니.....(뭐;;;??)

그런데 팔다리가 달린 걸 봐서는 모 애니의 인어 같... 거참 차마 SSAMSUNG™+쥐대갈™의 녹색성장(?)의 결과라고 할 수도 없고...-ㅅ-;;;;
Commented by leopord at 2008/12/05 14:15
인간의 앎이란 얼마나 좁은가를 '알게 될' 뿐이군요. ^^;;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16 10:43
재치있는 지적입니다.
Commented by June at 2008/12/05 17:57
만물박사 아리스토텔레스의 물고기 이야기를 보니 생각나는데, 하이에르달의 '콘티키 호 표류기'에 보면 한밤중에 왠 괴상한 물고기가 콘티키호로 뛰어들어와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붙잡고보니 처음 보는 녀석이라 의아했는데, 나중에 서적을 뒤져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물고기 분류에 언급되었던 녀석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진짜라면, 고대의 물고기가 그동안 숨어있다가 현대에 재발견 된 셈이니 이것도 "물고기는 말이 없다"인 걸까요 =)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16 10:44
아리스토텔레스 자체가 좀 불가사의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解明 at 2008/12/05 23:39
『산해경』의 인어아저씨가 참 귀여웠는데(?) 말이죠. =ㅅ=;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16 10:46
중국서적 취급하는 도서문화중심이라는 곳에서, 산해경 도판을 모아놓은 책을 운 좋게 구한 적 있습니다. 산해경 삽화가 들어간 몇 종의 책을 한 권으로 모아놓은 것인데, 용케 손에 넣었습니다. 다만 그때 같이 있던 요재지이 도판을 모아놓은 책은, 수중에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습니다. 3년여가 지난 지금도 무척 아쉽습니다. 도서문화중심의 중심은 아마 center를 한자어로 옮겨놓은 것이겠죠? 신기한 곳입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8/12/07 08:56
1. 러브크래프트 월드 자체가 "외계에서 온 어떤 종족과 그 뒤에 온 다른 종족이 서로 전쟁하고 그 유산을 후에 태어난 하등 종족인 인류의 유산에 남기고 일부의 유적만 남긴채 미래에 다시 등장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떡밥+ 우주관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다곤"(혹은 데이곤)은 그런 유적에 우연히 표착한 어느 선원(무려 1차 대전때 독일 유격함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가 그 일을 겪고 미쳤기 때문에 어쩌면 환상이라는 암시를 두고 있지요

2. "다곤"의 영화화한-스페인 합작입니다.-판은 원작과는 달리 "인스버스의 그림자"를 텍스트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고기 종족의 지배" 이야기가 더 잘 담겨 있지요

3. 여담이지만 러브크래프트는 평생 통조림만 먹고 살았고 증상을 보면 정신분열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해산물을 죽도록 싫어했다더군요. 그 특유에 미끈미끈함에 진저리를 쳤다고 하는데 소설 전반에 그가 얼마나 해산물을 싫어하는 지 아주 잘 드러납니다.

ps: 다곤 자체가 바이블에 나오는 블레셋의 신 이름입니다. 바이블에서도 언급이 되지요 ^^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16 11:11
커멘트 감사합니다 ^^.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스티븐 킹의 작법서에는 러브크래프트를 <어휘를 이상하게 쓰는 작가>의 대표적 사례로 꼽아놓더군요.
Commented by 간달프 at 2008/12/15 20:34
몸이 아파서 다른 이야기는 못 드리겠고....결혼 축하드립니다. (아아 오한이...)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16 11:12
앗.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pillory at 2008/12/17 02:14
러브크래프트는 많이 좋아하진 않는데, 영화 다곤은 쵝오였어염... 아오;; "그리고 모두의 경배 속에 바다에 영원히 거하였다" 엔딩나레이션은 감동적..
Commented by 김태 at 2008/12/17 02:29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기나긴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는 좀 편했던 것 같습니다. ^^ 이준님의 커멘트처럼 소설 다곤과 영화 다곤은 많이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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