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3일
에라스무스(10) - 죽은 자에게서 이문을 뜯다 - 2008년 공황
저번 토요일 한겨레 <에라스뮈스와 친구들>에 실은 글입니다.
내년부터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상황이 될텐데 어떻게 동의를
얻을까요? 도덕성이 하나도 없는 정부라 헤게모니도 없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다가 속이 상해서 썼습니다. 언제나처럼요.
죽은 자에게 세금을 물리다
‘죽은 자에게 세금을 물리다(a mortuo tributum exigere, 아 모르투오 트리부툼 엑시게레)’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서까지 돈을 받아 내다니, 참 지독하지요. 혹시 이 말은 부자들에게 이른바 ‘세금 폭탄’을 물리는 정부를 비난하는 말일까요?

에라스무스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세금’은 정부가 거두는 돈을 뜻하지만, 고전에 정통한 에라스무스는 이 격언을 훨씬 넓은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죽은 자에게서 이문을 챙긴다’고 말이죠. 조금 골치 아픈 이야기지만, 그는 ‘조세’(희랍어로 phoros, 포로스)와 ‘이자·이윤’(라틴어 fenus, 페누스)이 한 뿌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가 보기에, 첫째 이자놀이에 빠진 대금업자, 둘째 상권을 독점하는 장사꾼, 셋째 특권계층인 귀족 제후, 그리고 끝으로 부패한 성직자, 이 네 가지 집단이야말로 “죽은 자에게조차 세금을 뜯을” 정도로 “창피한 줄 모르고 제 이득만 취하는” 사람들이라는군요. 그는 “소유에 대한 욕구가 팽배하여” 닥치는 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현실을 개탄합니다.
"어떻게 같은 어원이 된단거야?" 으,사실은 좀 복잡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자'를 뜻하는 라틴어 fenus의 원래형태를, 에라스
무스는 foenus(포이누스)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희랍어
phoros, 즉 foros와 비슷한 것이 바로 보이죠. 그런데 Lewis와
Short가 편찬한 렉시콘에는 'foenus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견해이고, faenus(파이누스)가 맞다'라고 해놨습니다.....
이런 논쟁을 신문지면에 옮길 수는 없었죠. 양해 부탁드립니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과연 개인의 이기심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켜준다는 ‘보이지 않는 손’은 늘 제대로 기능하는 걸까요.
이번 글에 실으려다가 지면 때문에 놓친 부분이, 바로 그린스펀 스스로
시장 실패를 인정한 이야기입니다. 다음 기회에 글을 쓰고자 합니다....

에라스무스의 조국 네덜란드는 17세기에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넘치는 돈이 미술계로 흘러들어가 화가 렘브란트는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원형이 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도 이때 그린 집단 초상화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기 시장에 몰렸는데, 이때 투기의 대상이, 글쎄, 튤립의 알뿌리(구근)였다나요. 공교롭게도 에라스무스가 죽고 100년이 지난 1636년, 튤립 알뿌리 값은 고점을 찍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집을 저당 잡혀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요. 그 다음엔? 튤립 값이 폭락하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붕괴했고 사람들은 파산했습니다. 수입이 끊긴 렘브란트 역시 서서히 몰락하여 비참한 가난 속에서 죽었다지요.

그런데 공황을 겪으며 모두가 손해만 보는 건 아닙니다. 돈이 급한 이는 가진 것을 내다 팔고 여윳돈이 있는 이는 헐값에 사 모읍니다. 부자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은 자에게서 이문을 챙기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지요.

죽은 자에게서 돈주머니를 털어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돈주머
니를 긁어내다보니 죽게 된 것일지도 모르죠. 요즘도 마찬가지일듯.
그런데 이럴 때 굳이 부자의 세금을 줄이고 가난한 이웃의 부담을 높여야 할까요? 몇몇 부자들만 무는 세금은 ‘세금 폭탄’이라며 깎아주자던 분들이, 평범한 사람이 물 세금은 국가 재정을 위해 손대지 않겠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부가가치세 따위에 ‘역진세’의 성격이 있다는 것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나요?) 게다가 이제 곧 ‘고통분담’이라며 힘없는 이웃을 고통으로 내모는 때가 닥치겠지요.
옛날에 에라스무스는 말했습니다. “결국 제후들은 이에 상응하는 증오를 얻게 되리라.” 지금의 이 깊은 절망과 설움 속에서 행여 증오가 싹틀까봐 나는 정말 두렵습니다.
# by | 2008/11/03 09:36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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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는 자님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 본좌들도 옛날만큼 약발은 없지요.
StarLArk님 - 빨갱이로 몰아는 가겠지만... 아마 빨갱이를 때려잡자고는 못할 겁니다.
- 다만... 빨갱이로 몰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해질 수는 있겠죠.
zodi님 -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요즘 나오는 책들엔 다르게 이야기들 하더군요. ^^;
책벌레님 - 음. 그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군요.
- 그런데 렘브란트 그림들이 비싸게 팔리곤 했으니까요... 좀더 찾아보겠습니다.
LackSuiVan님 - 정말 종부세 처리하는 거 보니까 야금야금 정도가 아니더군요. 지독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