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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7) - 한 배에 타다, 국가의 문제



한겨레 <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코너에 실었던 글입니다.
마무리가 좀 아쉬웠는데,  얼마전 소로의 글을 다시 읽다가
좋은 문장을 찾았습니다.  신문에 실었던 글에 마무리 단락
을 덧붙여보았습니다 -                                               .



한 배에 올라 (인 에아뎀 에스 나위, in eadem es navi)


 

   ‘나’라는 개인에게 국가는 무엇일까요?


   국가를 배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한 배에 올라 있다(in eadem es navi, 인 에아뎀 에스 나비)’는 라틴어 표현은 국가가 함께 위험을 겪는 공동운명체임을 뜻합니다. “…모두 함께 난파의 위험을 같이 겪기 때문이다. 배꼬리에 앉아 있든, 뱃머리에 타고 있든, 아니면 배의 중앙에 있든지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어떤 경우이든 위험은 마찬가지”라고 에라스무스는 설명합니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죠. “인간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려고 배 밑에 구멍을 내기도 한다. 자신도 함께 타고 있는데 말이다.” 당시에는 귀족들끼리 원로원에 모여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키케로가 보기에 국가란 모름지기 공화국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키케로는 공화정의 붕괴를 막지 못했고 내전 중에 살해당했습니다.



   로마는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 되어서도 건재했고 사람들도 그럭저럭 살아갔습니다. 제국이라는 국가형태를 키케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베르길리우스 같은 시인은 내전이 끝난 후 국민 화합을 꿈꾸며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지었습니다.
 
  
<아이네이스>의 주인공은 저승에 들러 지혜를 얻은 후 로마의 시조가 됩니다. 그래서 훗날 중세의 시인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저승 여행을 노래한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세웠습니다. 그림과 같이 저승의 조각배에 월계관을 쓴 베르길리우스와 두건을 쓴 단테가 탔습니다. 한편 단테 본인은 조국 피렌체의 정치적 격변 때문에 망명자가 된 사람이지요. 들라크루아는 이 지옥의 조각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원 그림의 섬뜩한 색채는 살릴 수 없어서, 거친 물결의 느낌을 주기 위해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을 빌려왔습니다). 들라크루아도 온갖 정치적 격변을 겪었지만, 단테와는 달리 조국 프랑스가 자랑하는 화가로 남았습니다.





들라크루아, <단테의 조각배>입니다. 왼쪽에 빨간 모자를
쓴 것이 단테의 모습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저승여행의
가이드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입니다.                            .

 

   키케로는 공화국을 고집했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제국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시인 단테는 정적에 의해 숙청되어 피렌체를 떠나야했지만 화가 들라크루아는 거듭되는 혁명에도 눈치껏 살아남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게 국가란 이런 것이어야만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것이어야만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국가의 형태가 어떻든 큰 관심이 없습니다. 국가의 체제나 형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왕국도 공화국도 자유주의 국가도 사회주의 국가도 모두 다양한 국가의 형태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지요. 하기야 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노자(노자)는 국가란 아주 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가 국민에게 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고요. 이러한 옛날의 국가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특정한 국가 형태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요?




신문에 실렸던 글은 여기서 끝납니다. 한창 바쁘게 글을 싣고
보름 뒤, 나는 이 글에 알맞은 결말을 H.D.소로의 <시민의 반
항 (시민불복종) >
를 읽다가 발견했습니다.여기 덧붙입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개인의 양심을 국가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미국이 멕시코땅을 쳐들어가자 소로는 그 전쟁이 잘못 되었다며 세금 납부를 거부했고, 그 결과 감옥신세를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는 정부의 개선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인가?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국가가 개인을 보다 높고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개인을 이에 알맞게 대우하게 될 때까지는 참으로 자유롭고 계몽된 국가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국가를 상상해보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아직은 어디서도 실현된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도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몇몇 어르신들이 고집하는 대로 국가가 흘러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by 김태 | 2008/09/16 16:02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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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9/16 17:03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 한 배에 올라 (인 에아뎀 에스 나위, in eadem es navi)
그런데, 본문에서는 나위가 아니라 나비라고 하셨거든요. 음 쓴데로 그대로 읽으면 나비가 맞을거 같기도 한데..두 발음다 가능한 건가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8/09/16 19:39
앗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잠시 실수를. - 둘 다 가능하긴 합니다. '나비'는 중세 발음이고요, '나위'는 고전시대(기원전후)의 발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원래 옛날에는 V와 U가 구별이 없었는데, 나중에 중세 쯤에는 v와 u로 나눠졌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9/17 00:22
아, 그리고, 저번에 아가디아 번역본이 올해 3/4분기에 나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7-9월로 알고 있거든요. 교보문고에서 찾아봤는데 없길래..혹시 출판사나 번역자 이름 아시나요?
Commented by 배길수 at 2008/09/23 06:16
들라크루아 그림보다 김태님 그림이 더 등ㅉ...아니 버디한 밀도를 생생하게 살리셨군요(쳐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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