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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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 러일전쟁이 터지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한국이 수퍼 파워가 되어 다른 나라들을 복속
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가 평화롭게 서로를 이해하며 잘 지
내는 건데요 - 그게 더 어려운 일일까요?
                             .




한국사람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않은 일일텐데, 일본에선 요즘
러일전쟁을 나쁘게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더 했겠지
요. 일본의 승리를 기뻐한건 일본군국주의자들만이 아니었습니
다.
<나는 고양이다>에서는 동해 해전의 승리를 기리는 나쓰메
소세끼
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이제 백인이 황인을 우습게보
지 못할 것'이라며 손문은 통쾌해했다나요.심지어 <시일야방성
대곡>으로 유명한 조선의 지식인 장지연마저 일본의 승리를 기
뻐하였습니다. 전쟁의 명분에 솔깃한 것이겠지요.                 .



장지연에 대한 글은 :  http://2kim.idomin.com/156


*


그러나 바로 그 명분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했던 것일까요?


일본에서는 인정하기 즐겁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1)1904년 뤼순
전투에서 노기 마레스께돌격을 명령합니다.  러시아군은 기관
으로 응수합니다.  5만7천명의 일본청년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윗사람이 관성처럼 내린 명령에, 아랫사람 수만명 수십만명이 죽
거나 다치는 비극. 1차대전 솜전투의 비극은 이미 '러일전쟁'에서
예고되었던 것입니다.
  (2) 이 전후로 노기의 두 아들도 전사하였
습니다.(3) 전쟁이 끝나고 몇년이 지난 후 노기도 부인과 함께 동
반자살합니다.  (4)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희생은 조선 사람의 희
생일 겁니다.  1905년부터 조선은 주권을 잃게 되니까요.          .


노기가 천황을 따라 죽은후에,일본에서는 군신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만 모신 것이 아니라 조선땅 한복판에까지 그 신사를 세워놨
다고 합니다.                    -  남산에 있던 '노기신사'에 대한 글은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35950



과연 이런 희생이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20세기 동북아시아의 무시무시한
역사를 생각해봅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말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요?                                                           .




창비주간논평에 보낸 만화 :
1904년 :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280.aspx
1905년 :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283.aspx

 

by 김태 | 2008/08/31 15:31 | 연대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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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불평불만 : 1905년 - 러.. at 2008/11/19 10:38

... 파악해보고 싶었습니다.손문이 기뻐한 이야기는 나름 유명하지만, 장지연이 러일전쟁의 승리를 축하한 이야기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http://kimtae.egloos.com/1990142 이전포스팅에서 다루었습니다. http://2kim.idomin.com/156 에 링크를 걸었습니다. ... more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08/31 16:01
노기 마레스케만이 아니라 기관총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제1차세계대전까지 보병의 무차별 돌격전술을 열강의 장교들이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노기 마레스케의 전술구사가 특별히 무능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의 평균적 전쟁관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발틱' 은 '발트해' 의 형용사형 표기이니 '발트해 함대' 라고 함이 어떠신지요.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08/08/31 18:06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에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는 바람에 일본이 패망하게 되었다라는 논지를 펼쳐서 꽤나 기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 러일 전쟁을 좋게 보는 분위기가 돈다라...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네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8/08/31 18:31
1. 제임스 조이스의 모 소설에서도 약소국 아일랜드 인들이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화제로 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2. 사실 여순에서 삽질하게 된게 영화로도 나와있는 203 고지 공방전의 문제때문이지요. 203 고지 공방전에서의 노기의 전술 자체는 당대 일본에서도 상당히 비난을 받았고 일명 "지휘권의 임시대여"라는 편법을 동원해서 전술을 바꾸었던(본국에 있는 해안방위용 대포를 끌고 가서 사전포격에 연계 진격을 하는) 후에 무려 "30분"만에 함락시킵니다.

3. 여순공방전의 목적은 여순항 내에 피난해 있는 러시아 함대를 원거리 포격으로 격침시키는 전략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제에 편한 203 고지를 점령해서 통신시설을 완비하고 후방의 포대가 여순 항내의 함선에 장거리 포격을 가하는 것이지요. 203 고지 함락후에 실지로 그걸 성공시켰고 기타 다른 고지와 여순항 자체는 좀 더 싸운후에 항복하게 됩니다.

4. 현대 일부 사가들은 사실상 함대를 무력화 시킨 상태에서 포위전후에 주력을 다른쪽으로 전용하거나 최소한 203 고지 함락까지만 하는 것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영미권에 막대한 전쟁 채권 투자금을 끌어들였던) 일본으로서는 세계에 알릴만한 승리를 원했고 그것이 무리한 여순공방전의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지요.(실지로 레닌은 "여순 함락으로부터 짜르 체제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ps: 청일 전쟁때도 여순 공방전이 있었지요. 이때는 일본군이 반나절만에 여순 자체를 점령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때의 지휘관도 노기 장군이었지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0 16:51
러시아 지배하의 핀란드와 폴란드에서도 이 전쟁은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8/09/01 20:54
좋은 커멘트 감사합니다. 마감 때문에 댓글이 늦었습니다.^^
ghistory님 - 노기 마레스케가 평균적이라는 점에 저도 의견을 같이 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노기는 비판을 받긴 했지요. 1차대전 때도 거의 모든 지휘관들이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긴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다만 그 '평균값'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1차대전 이후에 구체제가 붕괴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전쟁사가는 아니지만 갤브레이스가 재치있는 논평을 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마감 끝나면 올려볼게요.
死海文書님 - 한동안 일본에서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러일전쟁을 부정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바 료타로 이후에 일반 대중의 시각이 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시바 료타로 개인의 영향은 아니겠지만, 어느 시점부터 일본이 과거를 긍정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시바가 일정한 기여를 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준님님 - 반갑습니다^^. 제임스 조이스 소설은 제가 몰랐습니다.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일전쟁 때의 뤼순공방전 지휘관이 젊은 장교였던 노기였기 때문에, 러일전쟁 때에도 쉽게 할 줄 알고 노기한테 맡겼다가 피봤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참고로 노기가 한국계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옛날에 어느 분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제법 호응이 있는 설인가보군요. 이글루스에도 글이 몇편 올라왔네요. http://lyuen.egloos.com/4542980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0 16:54
'도고 장군' 이라고 하셨는데, 해군의 장성은 '제독' 이라고 표기합니다. 나머지 분과들이 장군이고 총칭할 때에는 장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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