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글루스 | 로그인  


1902년 - 보어전쟁 종결



1902년(만화)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277.aspx



사진 속의 아이를 보세요. 사진 찍는 이들이 들려준 장난감을 손으로 잡고
있지만, 분노와 원한에 가득한 눈빛은 저 멀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굶고병
든 이 아이는 사진찍은 후 얼마 못살았다는데요 -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

20세기 연대기 : 1902년의 사건으로 보어전쟁(1899~1902)을 골랐습니다.



영국이 일으킨 말도 안되는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민간인을 강제수용소
집어넣어 굶겨죽이는 짓을 저질렀습니다-대영제국이.전쟁터에서 죽은 보
어인 성인 남자가 3천인데 수용소에서 죽은 여성과 어린이가 2만수천

라고 합니다. 강제수용소의 참상은 말로 다 하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



보어인의 시선에서 이 전쟁을 다룬 사이트. 사진자료가 잘 되어 있습니다.
http://web.archive.org/web/20060616040039/abw.netfirms.com/index.html



*



그러나 바로 여기에 맹점이 있습니다. 백인 민간인의 피해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자칫 아프리카 원주민에 대해 잊게 되기 쉽습니다. 편집자님이 전
화로 물었습니다.
"[민간인을 잡아가두는 강제수용소가 도입되었다]라고
썼더군요.  [최초로 도입되었다]라고 하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왜
[최초로]라는 말을 뺀 건가요?"                                                       .


나는 대답했습니다. "찾아보니 영어로 Concentration Camp, 즉 강제수용
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게 보어전쟁 때였다네요.  그렇다면 최초로 도입
된 것이 맞겠죠.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요... 보어전쟁 이전에도 필
리핀과 쿠바에서 백인이 원주민을 잡아가둔 수용소들이 있었대요...  이상
하죠?  백인이 갇힐 경우엔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별해서 쓰지만 유색인
종이 갇힐 경우엔 그냥 구별이 없나봐요.
 '민간인'이란 것은 이때까지만해
도 유색인종에게는 적용되는 특권이 아니었던 걸까요? 전 잘 몰라서..."  .



*



보어전쟁에서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은, 이 전쟁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이란 점입니다.  백인인 보어인과 백인인 영국인이 싸웠습니
다. 원주민들도 전쟁에 동원되었습니다. 백인인 영국인이 전쟁에서 이기
자, 백인인 보어인은 다시 지배층이 되고,  원주민은 계속 예속 상태에 놓
였습니다.                                                                                   .


원주민 1만여명 역시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통계가 있지만 정확한 숫
자는 아직도 논의대상이라고 합니다. 결국 알 수 없겠지요.                 .



*



'민간인'의 특권이 유색인종에게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1950년대   보도연맹노근리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이 민간인이라는 인정
을 받는 것조차 최근의 일입니다 (물론 피부색은 황색의 한국인이면서 마
음만은 순백의
미국인인 몇몇 미국교 신자들은 아직도 그들을 민간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2000년대 이라크에서 죽은 사람들은 아직도, 민간인
도 전투원도 아닌 '부수적 피해'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어전쟁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만,   지면이 부족해서 줄이겠습니다
.


by 김태 | 2008/08/25 19:22 | 연대기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kimtae.egloos.com/tb/197524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8/25 19:33
듣기로는 보어전쟁 이전까지 그러니까 1900년이 가까워진 상황에서도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 식민지에서는 노예제가 시행되었다고 하던데... 뭐, 영국이 들어가서 그 제도를 폐기시켰다고 하니 뭐 좀 아이러니 하기도 하네요. 이러나 저러나 보어군과 영국군 모두 원주민인 흑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8/08/25 22:18
보어전쟁 전후 남아프리카에서 유색인종의 처우를 다룬 책 가운데, 우리한테 가장 입수하기 쉬운 책은 의외로 <간디 자서전>이더군요. ^^ 젊은 변호사 간디는 영국령 남아프리카와 보어령 남아프리카에서 모두 활동을 했고, 양쪽 모두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대요. 보어전쟁 때에는 의료지원부대를 했고, 그 이후 영국령으로 통일된 남아프리카에서 계속 인종차별을 받다가, 1907년부터 비폭력저항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연대기 <1907년>에서 다루어볼까 해요.
Commented by 간달프 at 2008/08/25 22:25
아니, 1903년은 어디로 간 것이지요 이거? 사건이 없었던 것인가......

ps. 로마제국 쇠망사는 다음에 한번 뵈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보십사.......ㅎㅎ
Commented by 김태 at 2008/08/25 22:26
1903년은 Teddy Bear가 출시된 해이지요. ^^ 그 해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적으려던 참입니다.
Commented by LackSuiVan at 2008/08/25 23:21
거의 인간이 제일 처음 이동한건 아프리카계 사람들인걸로 알고있는데 고대의 이집트 노예부터 현대의 인종차별까지 너무나 슬픈 대우를 받고 있어서 화가 납니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에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8/08/26 08:46
이명박 때문이라는 부분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바뀌었더라도 같은 맥락인 거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우승열패의 신화>는 박노자 선생의 책 제목이기도 하지만, 당시 유행한 사회진화론의 핵심교의이기도 하지요. 박노자 선생의 지적처럼, 이명박 이 양반, 사회진화론의 직계 손자뻘 될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명박이 스스로 생각처럼 우월한 자가 아니라는 점이죠... 미국교 신자이지만 미국인도 아니고... 6^^;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0 16:44
보어전쟁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영국 중심적입니다. (제2차) 남아프리카 전쟁이라는 좀 더 중립성이 높은 표현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보어인' 이라는 표현도 영국인들이 붙인 것인데, 당시에 이미 '아프리카너들'(Afrikaaners)이라고 대신 지칭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알아보아야겠습니다.

'대영제국' 이라는 표현도 근대 일본에서 만들어낸 표현인데 굳이 우리가 제국주의 국가를 '대영' 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겠지요. '브리튼제국' 이라고 하기 싫다면 '영제국' 이나 '영국제국' 이라고 하심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