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6일
왜 바사리인가? - 조르조 바사리 (1)
“작가는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윌리엄 진서의 조언대로라면, 진작 이런 질문부터 던져봤어야 해요 : 나는 왜 바사리에 관심을 가지는가?

일단, 바사리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에요. 화가이기도 했지만 르네상스 최초의 미술사가(美術史家)였거든요. 그러니까 사마천이나 헤로도토스 급이랄까요. 이 점이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 연재 초반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멋쟁이 후배랑 밥을 먹다가 “그러니까 바사리가 실존인물인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아차!” 싶더군요. 저보다 아는 것도 많은 친구인데, 그런 친구가 그 포인트를 놓쳤다는 건 오롯이 내 실수입니다.
바사리가 중요인물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독자님들이 바사리 꼬마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였을 텐데요. 단행본에서라도 확실히 짚어줘야겠어요. 
다음으로, 나는 바사리 인물 자체에 대한 흥미가 있었어요. 본인 스스로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재능을 가진 바사리. 게다가 남의 천재성을 영영 증언하게 될 운명이었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도 흥미롭지 않나요? 단행본에서 분명히 밝혀주고 싶네요.
특히 그 어린 시절이 흥미롭습니다. 아레초 촌구석의 조르조 바사리. 아무 빽도 없고 연줄도 없던 꼬마. 그런데 나중에 문화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화가 아카데미의 설립자가 되고 수집가이자 역사가로 맹활약합니다. 어떻게 그런 거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보면 확실히 사연 있는 꼬마인 셈이죠.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인데, 이 점을 더 부각시켜 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거죠.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 객관적인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나는 나름 열심히 공부하여 준비했어요. 사료와 영어 논문들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더 드라이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러나 그건 잘못된 방향이었습니다. 머리로만 접근했지, 가슴이 없었어요.
독자의 입장이 되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래, 네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알았어. 또 무슨 정보를 전달하는지도 알겠고. 그런데 넌 그 정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니?” 음. 대답할 말이 없군요. 한번 더 매섭게 따져봅니다. “그 정보들에 대한 네 감정은 뭐야? 독자인 나한테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뭐냐고.”
물론 할 말이 없죠. 나는 그저 그 정보와 인용들 뒤에 숨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욕먹기가 싫어서. ‘미술사 전공자도 아니면서, 주제넘게 네 의견을 제시한단 말이야?’하는 욕이라도 비난이라도 행여 듣게 될까봐. 그래서 나 자신의 감상과 감정은 최대한 숨긴 겁니다.

서양 미술 순례를 떠났어요.
여름, 시사in 원고 때문에 서경식 선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읽게 되었지요. 서경식 선생의 글이니만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읽었지요. 아, 그런데, 그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도 너무 크게 다른 거에요. 서경식 선생은 <캄뷔세스의 재판> 그림의 왼쪽발목을 보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고, <반항하는 노예>를 보다가 감옥에 있던 형을 떠올리더군요. 선생이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랬겠어요? 절대로 절대로 아니지요. 선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선생의 글이 가지는 힘은, 그 감동은, 오롯이 그 때문이더군요. 선생의 인생이 담긴 글이니까요.
그래요. 숨기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내 감정을, 미켈안젤로에 대한 내 감정을, 바사리에 대한 내 감정과 내 솔직한 생각을. 나는 솔직하지 않았어요. 독자님들이 값싼 정보의 나열을 원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나처럼 그 정보들 뒤에 숨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바사리 이야기도 조만간 단행본으로 1권 분량을 묶을 터. 나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자기를 판다는 것’에 대하여.
# by | 2008/08/16 02:51 | 미술사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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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tamgudang.co.kr/product.html?productid=234 전 3권 9만원.... 만만찮은 텍스트구나...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 단행본이나 기다려야 하나... 클릭 쿨럭 그나저나 십자군 이야기 3권도 준비중이신듯. 파이팅 김태님! ... more
위안의 말씀 한마디 드리자면,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지요. "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적어도 내가 전달하는 지식을 다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내 프라이드다." 라고.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가 옆에 없어서 의역해석(;;) 한 점을 용서해 주시길 ㅎㅎ
ps 김태님,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어어어!!!!
http://life.jknews.co.kr/news/books_books1739.htm
나, 나오고야 만 것입니다! 이제 대광서림의 한자체 해석은 필요 없게 된것이죠, 예에!! 뭐, 기번 옹의 잡담을 보는 것 또한 재미라면 재미이겠는데 그것이 대폭 없어진 것은 좀 많이 아쉽지만, 뭐 나중에 동로마를 엄청 씹어댔을테니 soso 하네요 헤헤;ㅂ; 영어판 원서를 사서라도 나머지 각주들을 자체번역 해야되나 OTL
에에, '저것'이 나온 것을 기념으로 해서 한 말씀 올리는데, 혹시 '저것'의 만화화 계획은 없으신지요? "에에~!? 무슨~! 내 작업 속도를 보라구~!"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작권도 만료된 지 오래겠다, 꼬장꼬장 기번영감의 시각이 아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저것'을 보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있는 바. 한번,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