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03일
에라스무스 (6) - 아르킬로코스적인 말, 표현의 자유
바로 저번주 한겨레 연재 올라간 글입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조금 달랐어요.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에, 우리의 명박 패거리께서
인터넷 댓글까지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던 것이지요. 음. 가
만히 있으면 욕 한 번 덜 먹을 텐데, 그걸 굳이 한 마디씩 짖으시고
욕을 버는 거 보면, 우리 변태 명박 각하께서는 엄청난 마조히스트
가 아닐까 싶네요. 암튼 글 마지막 부분에서 살짝 명박과 졸개들을
씹어 주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들은 독설을 들어야해요. 그래서 남
들이 자기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이나마 알아야해요. 아휴..
중간중간 붉은색 글씨는, 분량 맞추느라 퇴고하면서 지운 부분이에요.
연재분엔 이 부분 없지요 - 이글루스판은 일종의 감독판이랄까요. ^^

홀바인(小)이 그린 초상
풍자와 독설, 아르킬로코스의 두 얼굴
영화 <300>에도 나오다시피 스파르타 사람들은 영웅적인 죽음을 칭송했지요. 전장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방패를 챙겨주며 스파르타의 어떤 어머니는 달랑 다섯 마디를 건넸다나요. 우리말로 옮기면 “이걸 들고 아니면 여기 실려” - 즉 싸움에 이겨 ‘방패를 들고’ 개선하든가 아니면 명예롭게 전사하여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는 거죠. 체면 좀 구기더라도 살아서 돌아오라는 모정은 깊이 숨긴 채, 죽어도 좋으니 방패만은 놓지 말라고 하네요.

의 방패 - 다비드의 그림에서
그런데 이토록 장엄한 군국주의의 흐름을 통렬하게 풍자한 시인이 있었어요. 방패를 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살아남은 게 중요하지 그깟 방패가 대수냐며, 하나 새로 사고 말겠다던 유쾌한 양반. 그의 이름은 아르킬로코스! 최초의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어떤 운좋은 트라키아인이 훌륭한 내 방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도망을 칠 때 그것을 숲 속에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도망을 할 수가 있었다.
그까짓 방패가 무슨 대수일 것인가,
그와 같은 것을 다시 사면 그만인 것을!
(번역 H.D.F.Kitto / 김진경) [또는]
트라키아의 어떤 자가, 내가 어쩔 수 없어서, 울창한 숲에 버리고 온,
흠 하나 나지 않은 내 방패를 집어 들고 자랑스레 떠벌이고 있구나. 내 생명을
보존했는데, 왜 내가 그깟 방패를 걱정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 방패는 이제
없지만, 이제 똑같이 훌륭한 다른 방패를 사면 될 것을.
(원전번역 안재원)
엄숙함이 지나쳐 숨이 막힐 때 풍자는 우리 숨통을 틔워줍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처럼, 사회에는 따끔하게 한 방을 쏘아줄 등에가 필요하니까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명예를 남겨야 한다고 사회가 한목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서처럼 ‘그 가죽 때문에 호랑이가 죽고 헛된 명예 때문에 사람이 죽는 거’라 꼬집어주는 개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르킬로코스의 두 얼굴은 우리를 난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풍자란 원래 두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웃음의 긍정적 힘을 찬양하는데, 마지막 몇 줄의 반전을 통해 ‘그러나 그 안에는 무언가 씁쓸한 맛이 있다’며 웃음이 얼마나 공격적일 수 있는지 말합니다. 나의 풍자할 수 있는 자유는 남의 독설을 들어야 하는 부담과 함께 옵니다.
물론 남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표현은 제한되어야 하겠지요.
똘레랑스를 위한 엉똘레랑스 - 관용을 위한 불관용이라더군요.
그러나 이 경우조차도 누구나 동의할 기준을 잡기 어렵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원래 이러할진대, 정말 위험한 건 독설이 아니라
독설을 금지하려는 행태가 아닐까요? 소통은 뒤로 하고 공권력
을 동원하여 댓글단 시민들까지 윽박지르는 어르신들한테 독설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요즘입니다.
# by | 2008/08/03 04:05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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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아르킬로코스의 경우가 심한 것은 사실입니다. 관련된 책으로는 :
1. 아르킬로코스가 처갓집(이 될뻔했던) 식구이자 자기의 옛친구에게 보낸 시를 직접 한번 보고 싶으시다면, [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 살림지식총서 118 | 김헌 (지은이) | 살림 ]을 권합니다. 살림총서답게 3천원 안팎이면 살수있고, 김헌선생님이 원전번역을 하셨으니 내용도 좋고요.
2. 한편 아르킬로코스가 심하긴 하지만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그 시를 공유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공개 내부 게시판에 올린 독설이라는 식인데요, 그 주장은 [ 희랍문학사 - 호메로스로부터 고대의 황혼까지 | 마틴 호제 (지은이), 김남우 (옮긴이) | 작은이야기 ]란 책의 한 페이지에 있습니다. 역시 텍스트 부분은 원전번역이지만, 아르킬로코스의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작은 책이지만 좀 비쌉니다.
3. 한편 [그리스 문화사 - H.D.F. 키토 (지은이), 김진경 (옮긴이) | 탐구당 ]에는 아르킬로코스가 희랍 문화사에서 가지는 위치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실 스파르타의 방패 이야기와 아르킬로코스를 대비한 것은 이 Kitto 선생의 혜안이었습니다. 원전 텍스트 부분이 영어 중역이라는 점과, 옛날에 쌌던 책값이 좀 팔린다 싶었는지 갑자기 몇 배로 뛰어버렸다는 점이 좀 안타깝긴 합니다만(물론 옛날판형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이쪽 분야에서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펭귄판 원저는 몇십만부를 팔았다나요. ^^
...써놓고 보니 별도의 글로 올릴 걸 그랬나요? 좀 길어졌네요. 장황하게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서, 이것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