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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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6) - 아르킬로코스적인 말, 표현의 자유


바로 저번주 한겨레 연재 올라간 글입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조금 달랐어요.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에, 우리의 명박 패거리께서
인터넷 댓글까지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던 것이지요.  음. 가
만히 있으면 한 번 덜 먹을 텐데, 그걸 굳이 한 마디씩 짖으시고
을 버는 거 보면, 우리
변태 명박 각하께서는 엄청난 마조히스트
가 아닐까 싶네요. 암튼 글 마지막 부분에서 살짝 명박과 졸개들을
씹어 주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들은 독설을 들어야해요. 그래서
들이 자기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 조금이나마 알아야해요.
아휴..


중간중간 붉은색 글씨는, 분량 맞추느라 퇴고하면서 지운 부분이에요.
연재분엔 이 부분 없지요 -  이글루스판은 일종의 감독판이랄까요. ^^


에라스무스(1466-1536)
홀바인(小)이 그린 초상



풍자와 독설, 아르킬로코스의 두 얼굴



   영화 <300>에도 나오다시피 스파르타 사람들은 영웅적인 죽음을 칭송했지요. 전장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방패를 챙겨주며 스파르타의 어떤 어머니는 달랑 다섯 마디를 건넸다나요. 우리말로 옮기면 “이걸 들고 아니면 여기 실려” - 즉 싸움에 이겨 ‘방패를 들고’ 개선하든가 아니면 명예롭게 전사하여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는 거죠. 체면 좀 구기더라도 살아서 돌아오라는 모정은 깊이 숨긴 채, 죽어도 좋으니 방패만은 놓지 말라고 하네요.

 
   고대 서양 세계에서 방패는 전사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서사시 <일리아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묘사하는 데 한 권을 할애할 정도입니다. 적을 죽여 방패를 빼앗는 것은 큰 명예였으므로 전사들은 그 명예를 위해 목숨을 잃곤 했습니다.
 
스파르타 레오니다스王과 그
의 방패 - 다비드의 그림에서

   그런데 이토록 장엄한 군국주의의 흐름을 통렬하게 풍자한 시인이 있었어요. 방패를 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살아남은 게 중요하지 그깟 방패가 대수냐며, 하나 새로 사고 말겠다던 유쾌한 양반. 그의 이름은 아르킬로코스! 최초의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어떤 운좋은 트라키아인이 훌륭한 내 방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도망을 칠 때 그것을 숲 속에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도망을 할 수가 있었다. 
                                      그까짓 방패가 무슨 대수일 것인가, 
                                      그와 같은 것을 다시 사면 그만인 것을! 
                                                                                                (번역 H.D.F.Kitto / 김진경)   [또는]
 
                        트라키아의 어떤 자가, 내가 어쩔 수 없어서, 울창한 숲에 버리고 온, 
                        흠 하나 나지 않은 내 방패를 집어 들고 자랑스레 떠벌이고 있구나. 내 생명을
                        보존했는데, 왜 내가 그깟 방패를 걱정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 방패는 이제
                        없지만, 이제 똑같이 훌륭한 다른 방패를 사면 될 것을.
                                                                                                 (원전번역 안재원)



   엄숙함이 지나쳐 숨이 막힐 때 풍자는 우리 숨통을 틔워줍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처럼, 사회에는 따끔하게 한 방을 쏘아줄 등에가 필요하니까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명예를 남겨야 한다고 사회가 한목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서처럼 ‘그 가죽 때문에 호랑이가 죽고 헛된 명예 때문에 사람이 죽는 거’라 꼬집어주는 개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러나 아르킬로코스가 근사한 사람만은 아니었대요. 그는 악랄한 독설가이기도 했습니다. 에라스뮈스는 라틴어 격언집 <아다기아>에서 ‘아르킬로코스적 발언(Archilochia edicta, 아르킬로키아 에딕타)’이란 경구를, “악의적인 표현”이라는 뜻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전설에 따르면 그의 고약한 인신공격을 견디다 못한 처갓집 식구가 자살을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랄까요. 

    시스티나 천장화에 미켈안젤로가 그려 넣은 벌거벗은 청년들은 2인1조로 무거운 청동방패를 메고 있습니다. 그 중에 방패를 놓치는 것인지 팽개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청년이 있어서, 그림처럼 키보드 앞에 앉혀 보았더니 영락없는 ‘악플러’가 되었네요. 온유한 에라스무스가, 청년의 ‘악성댓글’에 난감해 하는군요.

  아르킬로코스의 두 얼굴은 우리를 난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풍자란 원래 두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웃음의 긍정적 힘을 찬양하는데, 마지막 몇 줄의 반전을 통해 ‘그러나 그 안에는 무언가 씁쓸한 맛이 있다’며 웃음이 얼마나 공격적일 수 있는지 말합니다. 나의 풍자할 수 있는 자유는 남의 독설을 들어야 하는 부담과 함께 옵니다.

                                   물론 남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표현은 제한되어야 하겠지요. 

                             똘레랑스를 위한 엉똘레랑스 -  관용을 위한 불관용이라더군요.

                             그러나 이 경우조차도 누구나 동의할 기준을 잡기 어렵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원래 이러할진대, 정말 위험한 건 독설이 아니라

                             독설을 금지하려는 행태가 아닐까요? 소통은 뒤로 하고 공권력
                                을 동원하여 댓글단 시민들까지 윽박지르는 어르신들한테 독설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요즘입니다.



by 김태 | 2008/08/03 04:05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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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간달프 at 2008/08/03 11:39
아르코킬로스의 경우에는 많이 심하네요. 독설의 수준과 사용예가 대단히 사악해요. 소크라테스가 "자넨 무얼 알길래 그렇게 풍자를 하나?" 라면서 들이댔으면 주먹이라도 날릴 듯 합니다. 어느정도 날을 간 풍자는 괜찮겠지만, 독을 뭍혀서 휘두르는 독설만큼은 누구에게든 함부로 하면 안되겠지요. 그리고 우리 에라스므수 옹께서 얼마나 넓은 마음을 가졌는지도 다시 한 번 확인했군요. 겨우 님하 자제염으로 끝내다니!!
Commented by 김별다비 at 2008/08/05 15:48
샘샘~~ 저에요 ^^
Commented by 김태 at 2008/08/06 22:47
김별다비// 안녕하세요! ^^ 방가방가
간달프// 아르킬로코스의 경우가 심한 것은 사실입니다. 관련된 책으로는 :
1. 아르킬로코스가 처갓집(이 될뻔했던) 식구이자 자기의 옛친구에게 보낸 시를 직접 한번 보고 싶으시다면, [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 살림지식총서 118 | 김헌 (지은이) | 살림 ]을 권합니다. 살림총서답게 3천원 안팎이면 살수있고, 김헌선생님이 원전번역을 하셨으니 내용도 좋고요.
2. 한편 아르킬로코스가 심하긴 하지만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그 시를 공유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공개 내부 게시판에 올린 독설이라는 식인데요, 그 주장은 [ 희랍문학사 - 호메로스로부터 고대의 황혼까지 | 마틴 호제 (지은이), 김남우 (옮긴이) | 작은이야기 ]란 책의 한 페이지에 있습니다. 역시 텍스트 부분은 원전번역이지만, 아르킬로코스의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작은 책이지만 좀 비쌉니다.
3. 한편 [그리스 문화사 - H.D.F. 키토 (지은이), 김진경 (옮긴이) | 탐구당 ]에는 아르킬로코스가 희랍 문화사에서 가지는 위치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실 스파르타의 방패 이야기와 아르킬로코스를 대비한 것은 이 Kitto 선생의 혜안이었습니다. 원전 텍스트 부분이 영어 중역이라는 점과, 옛날에 쌌던 책값이 좀 팔린다 싶었는지 갑자기 몇 배로 뛰어버렸다는 점이 좀 안타깝긴 합니다만(물론 옛날판형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이쪽 분야에서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펭귄판 원저는 몇십만부를 팔았다나요. ^^
...써놓고 보니 별도의 글로 올릴 걸 그랬나요? 좀 길어졌네요. 장황하게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서, 이것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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