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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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안젤로 대 교황, 1라운드



바사리 작업 때문에 정리해야 하는 내용이라서, 좀 적어봅니다.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 연재에 필요한 내용인데, 정리가 잘 안
되어, 아예 좀 글을 써봐야 할 것 같습니다.  1505-6년 미켈안젤
로의 행적에 대해서는 바사리의 [전기]가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앤소니 휴스의 책으로 정리를 해봅니다.
                   .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율리우스2세


1503년 10월 30일 추기경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가 교황으로 선출
됩니다. 율리우스 2세 교황이 됩니다 : (105) 그는 뇌물과 정치적
책략으로 교황이 되었고 여러 세력에게 모순된 약속을 내걸었다.
... 그 약속들은 모두 깨어졌고 율리우스는 전제적인 교황으로 악
명을 날렸다. 
     그는 두 차례나 세속적인 군사행동을 한 것으로
도 악명이 높습니다 : (106) 게다가 그는 두 차례나 군대를 거느리
고 전투를 벌인 전사같은 교황이었다. 1506 에는 페루자와 볼로냐
를 교황령에 복속시켰고, 1511-12년에는 프랑스 군대를 이탈리아
에서 몰아냈다.
-이렇게만 써놓으니까 느낌이 안 사는데, 두 번의
전쟁에서 적과 아군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옛날의 적과 손잡고 현
재의 아군을 뒤통수 친 다음에, 다시 현재의 적과 손잡고 한 때의
아군을 뒤통수 치는 등, 참말 용자 중의 용자라 할 만한 양반이죠.
(체사레 보르자를 찜쪄먹었다고 하니,오죽하겠습니까. 시오노 나
나미의 책에 그럭저럭 사실관계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            .


1505년 피렌체에 통보하여, 미켈안젤로를 소환합니다. (107) 율리
우스는 미켈안젤로에게 자신의 웅장한 무덤을 맡기고 싶어했다.
.



라파엘로가 그린 미켈안젤로 (아테네학당)


미켈안젤로는 나름대로 서둘러 열심히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이 부
분이 좀 문제인데,  (110) 1505년 4월 미켈란젤로는 카라라로 가서
다양한 종류의 필요한 석재를 골랐다.  콘디비에 의하면 그는 산에
서 '몇 개월'을 지내면서   바다에 면한 절벽에 획기적인 거상을 깎
는다는 꿈을 품었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짧은 휴식기 동안 수많은
기회를 생각하며 정신없이 보냈다는 뜻일 것이다.
                     .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율리우스가 웅장한 무덤을 짓고 싶어
한 것이나, 미켈안젤로가 산을 깎고 싶어한 것이나, 모두 고대의 모
입니다. 출전을 찾아서 적어둬야 옳겠지만,바쁘니까 나중으로 미
루고요...  아무튼 율리우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군주가 되고 싶었던
것이고, 미켈안젤로는 당시의 궁정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거랄까요.
큰 무덤을 짓는 거나,산을 깎아 조각을 하겠다는 거나, 다 헬레니즘
때에 있던 이야기들입니다.  고대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이념과
잘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지요.                                                 .


취임직후 주조된 메달에 나타난
율리우스 2세의 수염 없는 모습



한편 앤드루 그레이엄 딕슨의 저서는,  율리우스2세를 로마와 연결짓습니다.
조금 길지만 옮겨보도록 하지요 :  (223-4)1503년에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
기경이 교황 율리우스2세로 선출되었다. 새교황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받고싶
은 인문주의시인들은 당장 그를 기독교세계의 정신적황제인  제2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찬양하였다.그의 교황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주조된 기념메달 가
운데 적어도 하나에 새겨진 명문에는, 그가 "교황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묘사
되어 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고,율리
우스 교황은 이탈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대를 몰아내겠다고 맹세했다... 1506
~7년에 계속된 전쟁에서...돌아오자 고대 로마 황제의 개선식을 재현하여 자
칭 카이사르의 이미지를 확립하였다.개선식에서 그는 네필의 백마가 끄는 전
차를 타고 로마 거리를 행진했다.  그가 그렇게 황제처럼 통과한 개선문 가운
데 하나에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카이사르의 명언이 새겨져 있
었다. 호전적이고 정치적 야심이 강한 율리우스는 서방 세계의 정신적지도자
가 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 이것도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

만화연재분에도 넣고 싶은 이야기인데,공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부분을 좀 수정해야 하는데, 현재 작업과 고칠
작업 가운데 어느 쪽이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독자님들께 소개하기
에 더 적절한지는 몇 시간 정도 고민해봐야겠어요.                    .



라파엘로의 그림에 등장하는
율리우스2세 모습(성체논쟁)


때마침 고대의 유물이 발견됩니다. (110) 피렌체에서 잠시 쉰 다음
에  그는 1506년에 수송되는 대리석을 받기 위해  로마로 돌아갔다.
아마 그는 1월 14일에 로마에서 발견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품 중 하나인 [라오콘]을 보고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율리우
스2세는 조각상이 아직 땅에 묻혀 있을 때 줄리아노 다 상갈로에게
그것을 조사하라고 명했다. 줄리아노는 미켈안젤로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작은 아들 프란체스코와 셋이서 함께 발견현장으로 갔다...
이런 이야기도 빠지기엔 좀 아깝죠? 그러나 전체 플롯에 맞추어 어
떻게 처리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



1506년이 되고 1월말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111) 1월31일, 미켈
안젤로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날씨가 궂어 배 한 척이 거의 침몰
할 뻔했고 강물이 불어 석재를 하역하지 못했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교황이) 계속 희망을 가지도록 해놓았으니까 교황이 제게 화
를 내지는 않을 거에요."
   이 편지 내용을 봐도 어빙스톤의 소설과는 확
다르죠?미켈안젤로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클라이언트를 다
루는데 닳고 닳은 면을 보여줍니다.그러나 율리우스2세는 한술 더뜨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번 연재분의 핵심 사건인데요 : (112) 작업은 4월
에 돌연히 끝났다.  미켈안젤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을 타고 피렌체
로 가버렸다... "제가 떠난 것에 대해 교황 성하께서 대단히 심기가 상하
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어요. ... 어쨌든 제가 로마에 더 있다가는 제 무
덤이 교황 무덤보다 먼저 만들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래서 저는 갑
자기 떠난 겁니다"...당시 미켈안젤로는 건축가 브라만테가 음모를 꾸민
다고 믿었으며,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
로 브라만테는 그에게 적대적이었지만...미켈안젤로의 갑작스런 결정에
는 필경 일종의 피해망상이 작용했을 것이다.  원래 위기에 마주쳤을 때
도피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음, 신랄하군요. 그런데 전기를 읽어보
면 정말 그렇긴 합니다.  미켈안젤로의 인간적인 면이랄까요 그런 걸 만
화에 충분히 담아내고 싶습니다.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

라파엘로의 그림에 등장하는
브라만테의 모습(성체 논쟁)


이 다음에 일어난 일은 다른 글에서 적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덧붙일 것은
이 무렵 교황이 미켈안젤로에게 천장화를 맡겼다는 것이지요.  제가  택한
가설은, 이 천장화 사건이 미켈안젤로가 잠수탄 것과 꽤 관계가 있다는 것
입니다.
(113-4) 그무렵 율리우스는 미켈안젤로에게 시스티나천장화를 그
리게 하려고 했다... 편지에 따르면 브라만테는 미켈안젤로가 그일을 할수
없을 것이라고 악의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인물화를 많이 그려본 적
도 없는데다가 이 인물들은 특히 높은 곳에 있어..아래에서 그리는 것과는
다르다."
   앤소니 휴스는 관련자의 당시 편지를 근거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사리나 미켈안젤로 본인이 생각한(또는 망상한) 바를
뒤집고 있죠. 그들은 (아마 미켈안젤로의 망상에 근거하여) 브라만테의 음
모론을 제기하고 있어요. 무슨 음모냐 하면 :
  브라만테의 적대감을 보여주
는 이 (편지) 대목은 콘디비,바사리,그리고 미켈안젤로 자신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그들은 브라만테가 교황에게 살아있는 동안에 무덤을 조성하
는 것은 불길하다면서, 미켈안젤로에게 천장화를 맡기도록 설득했다고 주
장했다.  그의 속셈은 미켈안젤로가 그림을 망칠 경우 브라만테의 먼 친척
인 라파엘로에게 그 일을 맡기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



라파엘로 그림에 등장하는 브
라만테의 모습 (아테네 학당)


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대부분 음모론이 그렇듯이, 이렇게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구라가 되는 경우가 많죠 :
... 이 주장의 진위는 상당히 의심스럽
다. 무엇보다도 라파엘로는 1508년까지 로마에 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율
리우스가 작업의 우선순위를 변경한 이유는 아마 현실적인 데 있었을 것이
다. [무덤을 설치할 성당을 아직 공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실제로 율리
우스가 새 성당의 기단에 축복을 내린 것은 1506년 4월 18일,그러니까 미켈
안젤로가 갑자기 달아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                                   .




이제 좀 윤곽이 잡히네요. 좋습니다. 어떤 부분을 고칠지, 어떤 부분을 그대
로 갈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십자군3권도 이런 식으로 정리해보고 싶어요.


by 김태 | 2008/08/01 07:41 | 미술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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