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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1) - 친구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친구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아미코룸 콤무니아 옴니아 , amicorum communia omnia )
한겨레에서 시작한 에라스무스 연재의 첫번째 글이었습니다.                                         .

2월에 올렸던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예수'(
http://kimtae.egloos.com/1473377) 글을 좀 더
풀어 쓴 것입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죠. 예수의 이름을 팔아대던 명박이와 추부길이가
어떤 작자들인지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알게 되었지요. 쩝.                                     .
 

 




  플라톤, 예수, 그리고 마르크스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들이 과연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있을까요? 그 자리에 빈센트 반 고흐까지 합석한다면? 북유럽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그 답을 아는 것 같군요.


  에라스무스가 살던 시절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였습니다. 배웠다는 사람들끼리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편을 갈라 으르렁거렸지요. 상호 불신과 증오의 틈바구니에서 에라스무스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옛사람들의 지혜를 얻는다면, 더 평화롭고 나은 세상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옛 지혜가 담긴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은 어렵고 양도 많아서, 사람들이 접하기 쉽지 않았어요. 에라스무스는 그 많은 문헌들로부터 수천 개의 지혜로운 말을 모아 <아다기아(Adagia)>라는 라틴어 격언집을 묶었지요.


  이 책은 아미코룸 콤무니아 옴니아(amicorum communia omnia)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친구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뜻이라나요. 아! 이처럼 마음이 넉넉해지는 말도 흔치 않겠네요. 그리스의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친구들은 고통을 또한 나눈다’고 노래했대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나죠?


  에라스무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그의 해석에 따르면, 친구들끼리 단지 마음을 나누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대요. 진정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모든 재산을 공유해야 마땅하다는데요.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한테는 낯설기도 하고 조금 위험하게도 들리네요. 그러나 오히려 옛날 그리스의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자연스러웠다고 에라스무스는 귀띔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나의 것과 너의 것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없는 공동체에서야말로 행복과 만족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적었지요.


  여기서 잠깐.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만이 아닌가 봐요. 외로운 화가였던 빈센트 반 고흐는 농부들의 조촐한 식탁에서 큰 행복을 발견하였어요. 보세요! 이 그림에서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 사이에 에라스무스가 몸소 앉아 먹을 것을 나누고 있네요. 훗날 빈센트는 친구들끼리 모든 것을 공유하는 화가 공동체 운동을 위하여 아를로 향하지요.


반 고흐에 대한 온라인 최고최대의 갤러리를 하나 소개할게요.
http://www.vggallery.com/painting/p_0082.htm 



  빈센트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선교사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그는 딱딱하고 어려운 설교를 하는 대신, 가난한 광부들의 친구가 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어요. 빈센트가 생각하기에 이것이야말로 예수의 가르침이었으니까요.


  에라스무스 역시 이상주의적 공산사회의 이념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플라톤적 공산국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이교도의 철학자들 가운데 플라톤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부합하는 사상가가 또 있을까?’ 고전학자 에라스무스는 당대 최고의 <신약성서> 연구자이기도 하니 이런 그의 말은 믿어도 되겠지요. 오늘날의 점잖으신 어떤 어르신들은 펄펄 뛰시겠지만.


by 김태 | 2008/07/29 21:45 | 고전어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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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불평불만 : 이탈리아 대주교의.. at 2009/03/06 02:52

... 만, 역시 글빨의 차이가 크군요. 내공의 차이입니다, 크헉!(내상을 입고 토혈하며 쓰러졌습니다)"플라톤, 예수, 마르크스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http://kimtae.egloos.com/1907842+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저는 인터넷에서 보고, 또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지금 인터넷으로 읽고 계시죠? 이런 아이러니는 조금 슬프기도 ... more

Commented at 2008/07/29 21: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태 at 2008/07/30 00:21
공산사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저도 저 글을 쓴 건 아닙니다^^ 뭐 저도 가톨릭이지만, 기독교 전반에서 이야기하는 윤리도덕이 이 땅에 실현될 수 있다고도 딱히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 신앙이 부족한 것일까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7/30 00:55
<아다기아(Adagia)>라는 책이 한글판은 있을까요? 아무래도 영문판은 있을거라는 확신이 99% 드는데, 한글판은 없을거라는 확신이 99%군요. 우리나라 번역에는 그닥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지만요. 한글판이 있다면 꼭 읽고 싶군요. 없으면...영어 배워서 읽어야 겠죠. ㅜㅜ
Commented by 김태 at 2008/07/31 01:10
나아가는자// <아다기아> 한글판은 이번 3/4분기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고전학과에 계시는 어떤 선생님이 옮기신 라틴어 원전 번역입니다.^^ 그런데 원저 자체가 엄청나게 양이 많아서, 그중 재미있는 글귀와 유명한 글귀를 골라서 번역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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