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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2) - 귀게스의 반지, 그리고 이명박



한겨레에 격주로 글과 일러스트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 번째 글입니다.  에라스무스
격언집 <아다기아>를 바탕으로 길지 않은 에세이를 쓰는데요, 이번에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격언,
[귀게스의 반지 (Gygis Anulus) ]로 몇 자 적었습니다.   글 후반부에 [이명박]도 등장하는데요 :

"만에 하나, 무능하고 독선적인 이가 권좌에 오른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건전한 비판에는
  귀를 틀어막고 뒤로는 불도저처럼 몰래 밀어붙이면서 입으로는 거짓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






귀   게   스   의      반   지
( G y g i s     a n u l u s )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가 있습니다. 이걸 끼면 무슨 짓을 해도 들키지 않지요.
나쁜 짓을 저질러도 벌 받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반지의 주인을 유혹합니다.

<반지의 제왕> 영화와 소설 덕분에 널리 알려진  이 반지 이야기는 원래 2천3백 년 전 플라톤
의 <국가>에 나오는 거랍니다. 사라진 대륙으로 유명한 아틀란티스의 이야기도 플라톤이 처
음 했다고 하니, 그러고 보면 철학도 SF도 판타지도 플라톤과 인연이 닿아 있네요.            .

로뎅의 <지옥문>을 배경으로, 골룸이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절대반지를 생각하고 있나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귀게스라는 목동이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큰 폭풍이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졌다나요. 호기심 많은 귀게스는 그 틈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땅 밑에는
진귀한 물건들이,  물건들 한 가운데는 거대한 청동 말이, 청동 말 안에는 벌거벗은 채 죽어 있는
덩치 큰 사나이가,   그 사내의 손가락에는 반지 하나가 있었답니다.  이 반지가 바로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였던 거죠. 반지를 슬쩍한 귀게스는 몰래 궁궐에 들어가  왕비를 유혹하고 왕을 살해하
고 왕좌를 가로챘습니다.                                                                                              .


이 이야기로부터 ‘귀기스 아눌루스(Gygis anulus)’, 즉 ‘귀게스의 반지’라는
 라틴어 격언이 생겼습니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책 <아다기아>에서, ‘이 말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풀이하였지요.       .

에라스무스 형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귀게스의 반지’는 현실 세계에도 있는 모양입니다.   동양 고전  <한비자> 에는
‘호랑이에 날개를 달다(위호부익, 爲虎傅翼)’라는 말이 소개되어 있어요. 중국사상 최악의
폭군이었다던 걸왕이나 주왕도,  만약 그들이 필부였다면 악행을 개시하자마자 목이 달아
났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나쁜 짓을 마음껏 꾸준히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권세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
에게 날개를 다는 격이라고 옛 현인들은 말했어요.  권력, 그것이야말로 현실 세계의 절대
반지입니다.                                                                                                     .


물론 현실주의적인  한비자는,   그래도  세상에 권력이란 게 없으면 불편하지 않겠느냐며,
대부분의 위정자는 중간 정도는  가는 사람이니 다행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어요. 그러나
 만에 하나, 무능하고 독선적인 이가 권좌에 오른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건전한 비판에는
 귀를 틀어막고 뒤로는 불도저처럼 몰래 밀어붙이면서 입으로는 거짓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지금 우리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 


골룸도 원래는 평범한 호빗이었다지요.  평범한 이조차 절대반지 앞에서는 이렇게 망가지기 쉬운데,
하물며 부적절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세상은 어찌 되겠습니까.   그림 속 골룸은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를 취하고 <지옥문> 앞에 앉아있어요.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모델로 삼아 이 작품을
 만들었대요.단테에 따르면 지옥입구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적혀 있다나요.

그래도 아직은 대통령이니, 그림 한 컷 넣어줍니다. 옛날에
썼던 그림이긴 한데,  또 쓰도록 하지요.  실용주의입니다.



그러나 아직 모든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귀게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교육을 통하여 사람들
이 참된 올바름이 무엇인지 알게만 된다면,  설령 귀게스의 반지를 손에 넣더라도 바른
행동만 할 거라고 플라톤은 자신 있게 결론내립니다.  고전학자 에라스무스가 옛사람들
의 지혜를 되살리기 위하여 라틴어격언집 <아다기아>를 지었던 것도 이러한 믿음 때문
이었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믿고는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니로군요.           .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2MB는 교육
으로 뭔가가 가능한 시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늦었다고나 할까요....  늦었어요, 늦었어~! ^^


by 김태 | 2008/06/03 01:03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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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어떤 맥잡 at 2008/06/03 01:05
언제나 애쓰셔요 >_< 밤에 들어와서 즐겁게 읽다가요.
슬픈 건 내용이 마냥 즐거울 수 밖에 없다는 거 하나빼곤 없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8/06/03 01:09
앗, 글 수정중에 읽어주셨다능... ^^ 감사합니다. 내용이 마냥 즐거울 수 없어서 저도 참... ㅠ.ㅠ
Commented by 간달프 at 2008/06/03 01:19
그래도 글은 다 읽었습니다. 에라스무스의 아다기아는 언제쯤 우리나라에 번역될 지 모르겠네요. 그 희망을 저 또한 읇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Commented by 책벌레 at 2008/06/03 01:25
에라스무스책을 읽고 싶어요..
Commented by brecht at 2008/06/03 10:22
신문에 실린 글 잘 읽었다능... 근데 신문에 실린 김태 옹 사진은 교체하는 게 나을 듯. 아님 일러스트로 교체하든가. 넘 수척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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