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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영화제 때 썼던 글 : 엑스칼리버

지난 충무로 영화제 때, 영화 <엑스칼리버>를 소개하는 글
을 하나 부탁받았습니다. 그때 쓴 글과 그림입니다. 영화제
용 글이다 보니, 마지막에 홍보성 멘트가 작렬하고 있군요.
 


엑스칼리버



   성배를 찾아 떠나는 모험. 젊고 아름답던 기사들은 병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최후의 만찬’ 때 구세주가 사용했다던 거룩한 술잔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러나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이제 모든 것을 잃은 늙고 지친 기사는 죽음을 맞으려 합니다. 평생의 노력이 덧없이 끝나려는 순간, 불현듯 기적이 일어나 기사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성배 앞에 섭니다.


   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티프는 서구의 문화와 예술에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성배를 다룬 수많은 예술작품의 정점에,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영화 “엑스칼리버”를 꼽겠습니다. 이 영화에는 잊혀졌던 신화와 판타지가 오롯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기독교의 외피를 두르고는 있지만, 성배를 찾는 이야기는 본디 켈트족의 신화에서 기원하였다지요. 애초에 그들이 찾던 것도 그리스도의 술잔이 아니라 마법의 솥단지였다나요. 그런데 영화 “엑스칼리버”는 원래의 켈트신화에 차라리 가까워 보입니다. 이교적 전통을 상징하는 마법사 멀린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캐릭터로 복원되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에서 멀린은, 흰 수염 무성한 노인 대신 정력적인 청년으로 그려져 있지요. 갤러해드·거웨인·보어스 등 내로라하던 원탁의 기사들 역시 보일락말락하는 단역으로 밀려나며, 아서왕 본인이 이야기의 중심에 돌아왔고요. 성배 역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종교적 상징 대신, 병든 왕 아서를 치유하는 신화적 아이템으로 되돌려졌지요.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 그림보다 아름다운 이 영화의 영상 앞에는 이러한 긴 말이 무색합니다. 감독 존 부어만은 현실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듯 보입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번쩍이는 판금갑옷들은 보기에는 너무나 근사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지요. 시들어 죽어가던 꽃들이, 아서왕이 지나가자 다시 활짝 피어난다는 그 유명한 장면에서는, 자연법칙마저 알게 뭐냐며 무시되어 있습니다. 죽었던 기사가 되살아나고, 대지에 칼을 꽂자 지진이 일어납니다. 모가나는 안개 속에서 하룻밤 만에 젊음을 잃지요.


   현실세계를 포기하고 신화세계의 꿈을 좇는 감독의 도전은, 마치 성배를 찾느라 모든 것을 포기하는 기사들의 모험과도 다르지 않지요. 이러한 아름다움의 추구야말로 감독 자신이 찾아 헤매던 ‘성배’가 아니었을까요? 1981년에 제작된 “엑스칼리버”가 오늘날의 판타지 영화보다도 오히려 1924년 프리츠 랑의 “니벨룽의 노래”에 가까운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이런 표현주의적인 과감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강렬한 영상과 음악은 그 자체로 신화적인 마력을 가지게 되어, 이 영화를 한 장면이라도 본 사람은 누구라도 그 인상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본 이 영화의 몇 장면을 잊지 못하여(81년 당시에는 영화관에 갈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장성한 후에 서울시내 곳곳의 중고 비디오 가게에서 여러 해 동안 발품을 팔며 “엑스칼리버”의 테이프를 찾아보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아 좀처럼 입수하지 못하였지요. 이 역시 필자에게는 나름대로 성배를 찾는 작은 모험이었달까요. 그런데 엉뚱하게도 최근 우연히 찾아간 할인마트(!)에 “엑스칼리버”의 DVD가 있더군요. 과연 이십년 만에 다시 보아도 예전의 기억과 감동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엑스칼리버”가 스크린에 걸린다니, 정말 대단히 기대가 됩니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의 즐거운 판타지에 어딘지 아쉬움을 느끼던 영화팬이라면, “엑스칼리버”를 반드시 한 번 보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영화에 적절히 삽입된 바그너와 칼 오르프의 음악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줍니다. 짤막하게 출연하는 리암 니슨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랍니다.










이 글을 쓴 인연에 공짜 영화표를 얻어서, "엑스칼리버"를 과연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아! 정말 대단하더군요. 함께
본 선배와 나오면서 "괴작이야! 괴작이야!"를 연발하였습니다.

by 김태 | 2008/03/05 13:15 | 글그림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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