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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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주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그림은 시사in에 기고했던 만화의
 부분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2MB에요.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2MB 정부의 초대 내각 인선을 보면서
참 해도해도 너무하는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히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요   약   하   자   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개념은 근사하기는 하지만, 마냥 좋아할 그런 개념은 아닙니다.
그 숭고한 겉모습 아래 현실의 여러 모순들이 숨어서 묻어가기 때문이랄까요.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 2MB 정부의 초대 내각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이죠.





1.
아   킬   레   우    스


원래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유래한 걸로 되어 있다지요.
슬쩍 찾아보니 [일리아스]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종종 보이는군요. (강대진 선생님이
도와 주셔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 먼 옛날 희랍의 왕과 귀족들은, 몇 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나요. 이른바 특권층 인사인 셈이죠. ...왕이니까 당연한 건가요.

그런데 그 특권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바로 전쟁터에서 앞장서는 권리였
다네요. [일리아스] 전투 장면을 보면 싸움할 때 앞장서는 짓이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주요무기가 투석(!)이나 투창인지라 전열에서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으면 좋은 표적이 되는 것이지요. 즉,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귀
족의 특권이었던 셈이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것도 이 언저리에서 나왔겠지요.

실제로 [일리아스]를 살펴보면, 숱한 왕들이 (참 왕들도 많이도 나오는 서사시입니다)
창에 맞아 돌에 맞아 죽어나갑니다. 왕자들도 엄청 죽고요. 심지어 신의 아들들도 앞장
서서 싸우다가 죽어나가지요.  사르페돈은 제우스의 아들인데, 전쟁터에서 앞장서다가
죽어요.  아킬레우스는 여신 테티스의 아들인데, 역시 곧 죽게 되지요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 죽는 장면은 안 나옵니다... 트로이 목마도 안 나오더군요...^^). 아! 당시만
 해도 [신의 아들]이란 것은 요즘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었나 봅니다.

음...  문약(文弱)한 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지만... [일리아스]에 나오는 왕후
장상들은 명예롭게 죽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킬레우스의 경우가 대표
적입니다. 아킬레우스에게 정해진 운명은, 가늘고 길게 살거나, 아니면 명예롭게 죽거
나 하는 것입니다. 헥토르를 죽이면 명예는 얻겠지만 일찍 죽는다는 운명이었지요. 물
론 인간으로서는 이런 운명을 알 수 없지만, 아킬레우스는 신의 아들인지라, 이런 정보
를 미리 얻었던 거에요. 여신인 엄마의 치맛바람이랄까. 아무튼 부동산 정보 따위나 미
리 얻어가지는 우리사회 신의 아들과는 달리-아킬레우스는 이런 정보에 근거하여 자기
 운명을 선택합니다. 그의 선택은 명예롭게 일찍 죽는다는 것이었다나요. 폼나는 일이죠.

요즘으로 치면 어떻게 될까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 아니, 특권층
일 수록 의무를 더 빡세게 이행하는 것 정도 될라나요? 소위 고통분담이란 것을 하면서
 특권층이 더 괴로운 몫을 떠안는 건 어떨지요? 그런 모습을 한번쯤은 보고 싶지 않나요?
누진세 더 내고 종부세 더 내고 부유세도 새로 내야 하고...   한 술 더 떠 사재를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이 정도는 하고서 대접을 바라야 하는 거 아닐까요? 흐음.



2.
테   르   시   테   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나름 멋진 개념이긴 합니다. 하지만 만화장이라는 것이, 원래 남
들 울 때 웃음거리를 찾아야 하고, 남들 웃을 때 눈살을 찌푸려야 하는, [등에]와 같은
존재인지라 (직업윤리랄까요), 필자는 여기서도 좀 딴죽을 걸어보고자 합니다(여기서
등에란 개념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바의 바로 그 등에이지요. 목숨 내놓고 하는 짓).

결국 문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무리 근사한 개념이라고 해도 아랫사람들 처지에
서는 뭐 그다지 달가울 것만은 없다는 거에요. 트로이 전쟁만해도 그래요. 왕후장상들
이 앞장서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 뭐 나름 폼이야 나겠지만... 아랫사람 처지에서는
 사실 애초에 전쟁하러 가지 않는 것이 더 좋았겠지요.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평화롭게.

재밌는 것은, 영웅서사시라는 [일리아스]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온다는 점
 입니다. 오, 역시 호메로스. 대단하지요, 그 옛날에.. [일리아스]2권에는([일리아스]는
 전체 24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2권이면 맨 앞대가리지요) 테르시테스라는
작자가 등장하는데, 무척이나 삐딱한 양반입니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폼잡고 뭐라뭐
라 연설하는데 옆에서 딴죽을 겁니다. - 글쎄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높은 양반들 좋아하는 전쟁 따위 때려치고 그냥 집에
가자... 뭐 대충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속이 다 시원하더군요. 물론 이런
주장이 윗사람들 보기에 좋을 리가 없죠. 그래서 그 자신 이타케의 왕이었던 오뒷세우
스가, 몽둥이(실은 왕홀이었습니다)로 테르시테스의 등짝을 후드려 패고 망신을 줘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지킨다며 적의 공격 앞에 스스로를 용감하게 드러내고 맞서싸우
던 높으신 왕후장상들이, 테르시테스의 삐딱한 한 마디에 당황한 겁니다. 부상도 죽음
도 두려워 않던 그 용사들이,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한 토막 말에는 덜덜 떨었달까요?

(물론 필자 생각입니다만) 아마도 그 한 토막 말에, 작은 진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죠. 애초에, 전쟁 따위, 할 필요 없는 것이었고, 이 거창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자체
가, 높은 분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아랫사람의 목숨을 걸
고 이루어지는 일종의 도박이며, 또 일종의 생쑈였다는 진실이 담겨 있었단 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이것도 생각할 거리가 많죠. 설령 누진세 다 내고, 부유세까지 더 내고,
종부세도 내고... 특권층이 이렇게 하고 나면, 정말 큰 소리 칠 자격이 생깁니다. 오오!
그러나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조금의 고통분담이라고 해도, 꽤 부담이 크거든요.
100만원 가진 사람은 큰 마음 먹고 1만원 쾌척해서 명예를 얻을 수 있죠. 그러나 1만원
가진 사람은 5천원 내는 일도 후덜덜 합니다. 그거나마 안 내면? 걍 두들겨 맞는 거죠.


잠  시
신약 성서에 나오는, 이른바 과부의 은전 한 닢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저기 하늘
에 계신 天神 보시기에는, 은화 한 닢 가진 사람이 낸 은화가, 부자가 낸 돈자루보다 더
기특해보인다는 말씀이지요. 감동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노블리스 오블리주하고는 맥
락이 확 다른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이거... 따지고 들어가면 꽤 깊고 재밌는 이야
기가 나옵니다만... 여기선 이 정도만 해두렵니다. (니체가 이 점을 참 잘 풀이했다죠!) 



3.
땅   부   자   내   각


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았는데...
지금 한국사회 돌아가는 꼴을 보면 뭐 이런 긴 이야기가 필요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고!

이건 옛날 식으로 말하면, 자기네는 후방에 앉아서 아랫사람들 보고 전선 맨 앞줄에 서
서 총알받이(아, 투창이 날아오니까 투창받이인가요)를 하라고 명령하는 꼴입니다! 또
요즘 식으로 하면, 자기네는 손톱만큼도 내놓지 않으면서,    이른바 고통분담이랍시고
 아랫사람들을 쥐어짜는 행태이지요. 육두문자 이외에 적합한 어휘를 찾을 수 없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군요. 정말 히밤바라고 큰 소리로 외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 원...

이번 정부는 애초에 1만원 가진 자한테서 5천원 다 받아내겠다고 선언을 하고 시작하는
정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왕후장상을 하는 작자들이, 100만원 가졌으면서도 1천원
도 내지 않으려고 눈을 까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고 살아왔더군요. 아아, 참으로 악착같
은 작자들입니다.  하기야 그 수장부터가, 자신의 의무를 줄이고 권리를 늘이는 데에만
 눈에 불을 밝히고 게걸스러이 달려들며 살아왔다지요. 허허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     이 런   내 용 으 로   이 번 에   짧 은   작 업   한   가 지 를   하 고   있 습 니 다.
잘   해 야   하 는 데   생 각 이   너 무   많 고   감 정 이   복 받 쳐    힘 이    드 네 요.




아, 참!
에, 혹시나 비난하실 분이 있을지도 몰라서 미리 밝혀두자면, 필자는 병장제대하지 않
았어요. 고도근시라서 보충역이었죠. 군대도 안다녀왔으면서 무슨 소리냐...라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몰라서^^...그런데 뭐 어차피 필자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왕후장상의 특권
층이라기보다, 비아냥 거리다가 등짝이나 두들겨 맞는 테르시테스에 가까울 테니까요.




by 김태 | 2008/02/27 02:59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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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torm at 2008/02/28 17:14
별로 '노블'하지도 않은 것들에게 '오블'을 바라면 안 되겠죠. _ _)
Commented by 眞レイアン at 2008/02/28 21:30
음.....임팩트!
Commented by June at 2008/12/05 17:51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예를 보니까 생각나는건데, 고대 아테네에선 전투시 군사장관(최고 지휘관격)이 전통적으로 우익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기본적 전술은 좌익이 강하기때문에 상대적으로 강한 적의 좌익과 맞부딪히는(즉 제일 위험한) 우익의 지휘를 군사장관이 맡았던 거죠.

글 전체의 논지는 김태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나저나 예전에 디씨시절 김태님의 십자군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우연히 처음 찾아오게 되었군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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