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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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이야기 3권 마무리 중입니다


한나라이야기 3권 마무리 중입니다. 이 작업 마치는대로 십자군입니다!!
그림 빠진 부분 보충하는 것과 동시에, 대략 이런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장량 : <사기>에 보니 곱상하게 생겼다고 나와있네요.



<사기> ‘유후세가’는 장량의 전기입니다. 몰락한 귀족 장량, 젊어서 황석공(黃石公)이라는노인을 만나 수련을 쌓았대요. (황석공의 정체는 신비한 ‘누렁바위(黃石)’였다나요.) 장량은 전쟁 중에는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고 후방에서 작전을 세워 능력을 발휘하고요, 통일 후에는 ‘상산사호’라는 수수께끼의 노인들을 모셔오기도 하지요. 결국 몸소 신선이 되겠다며 속세와 인연을 끊습니다. ‘유후세가’에는 이렇듯 판타지의 요소가 많아요.


후세의 많은 연구자들은 장량을 전형적인 도가 지식인으로 파악했습니다. 이전 세대의 법가 지식인과는 사뭇 다르지 않나요? 법가라면 얼핏 모질고 야박하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회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서구화된 요즘, 우리에게 더 익숙한 지식인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한비자>에도 나오지만, 이들은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식이 있었어요. 상앙이니 이사니 실제로 개혁에 나섰던 법가 지식인들 가운데 제 명에 죽은 사람도 없고요. 그들 덕에 민중의 삶이 나아진 것만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나 도가 지식인은 달라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거꾸로 자기 몸을 사렸답니다. 노자는 난세를 피하여 인간사회를 등졌지요. <장자>에는 벼슬살이에 묶였다가는 자기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철학이 등장합니다. 소하나 진평처럼 절묘한 처세술을 구사하며 복이란 복은 다 누리기도 하며, 장량이나 ‘상산사호’처럼 은일지사가 되기도 하죠. 개인을 중시하는 도가 지식인의 모습은 이후로도 동아시아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였답니다.



3권 3장 뒤에 들어갈 조각 글입니다. 이런 글을 잔뜩 쓰고 있답니다.
하필 이 글을 골라 올린 까닭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
혹시 뉴스로 열 받은 머리를 저도 모르게 좀 식히고 싶었던 걸까요?




by 김태 | 2010/10/20 06:14 | 동양사 | 트랙백 | 덧글(29)

카리브디스인가 스킬라인가? 선택에 대하여, 또...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7월31일자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글의 전문은 다음 링크를 클릭)

이글에서 두 개의 라틴어격언을 소개합니다.

1. 
..우선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 이럴 때 서양의 옛 지식인들은 “카리브디스를 피하여 스킬라에게 잡히다”(에비타타 카리브디 인 스킬람 인키디, evitata Charybdi in Scyllam incidi)라고 말했대요. 카리브디스와 스킬라는 둘 다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입니다. 스킬라는 한번에 여섯명의 뱃사람을 낚아채 잡아먹는 반면, 카리브디스는 소용돌이를 일으켜 모든 사람을 삼켜버린대요. 오디세우스는 고민 끝에 카리브디스를 피하여 스킬라에 가까이 배를 몰아갔다죠. 그의 판단으론 “여섯명을 잃는 것이 모두를 잃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어, “병마의 카리브디스를 피하는 대신 손실의 스킬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에라스뮈스는 말합니다. “재산과 생명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복구할 수 있는) 재산을 포기하는 쪽이 올바른 선택”이라나요.

2. 
..반면 나쁜 결과를 피하려다 오히려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기를 피하려다 불 속에 떨어지다”(푸뭄 푸기엔스 인 이그넴 인키디, fumum fugiens in ignem incidi)라는 말이 있대요..


그리고 동양의 격언도 언급합니다.

선택은 어렵습니다. 누구는 스킬라를 택해 손실을 줄이겠지만, 누구는 불구덩이에 빠져 고생하겠죠. 다만 선택을 해버린 이후에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옛 동양의 지혜에 따르면, 설령 마구간에서 말이 달아난대도 그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요.(새옹지마, 塞翁之馬) 무릇 세상일이란 ‘화가 복이 되기도 하니까요’.(전화위복, 轉禍爲福) 어쩌면 좋은 선택이냐 나쁜 선택이냐를 결정하는 건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행동일지도 몰라요.



끝으로 마지막단락에서 728재보선에 대해 언급합니다...
뒷이야기... 트위터에 올린 글 두 단락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뭐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긴한데, 
막상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만화부터 마감해야하겠죠. :)



by 김태 | 2010/08/01 04:36 | 고전어 | 트랙백(1) | 덧글(16)

레퀴엠, 5월에 떠난 이들을 기리며



5월22일자 한겨레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칼럼입니다.
저는 파리한 책벌레라, 생생하고 감동적인 글은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5월에 떠난 이들을 추모하렵니다.







레퀴엠, 5월에 떠난 이들을 기리며



죽음을 맞아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차피 죽을 텐데, 어째서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걸까요? “헛되고 헛되다” ― 라틴어 ‘바니타스 바니타툼(vanitas vanitatum)’을 옮긴 말이지요.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서>)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교훈을 그려내기 위해, 네덜란드 화가들은 ‘바니타스 정물’이란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생각해냈어요. 꽃과 유리그릇, 비눗방울과 인간의 공통점은 뭘까요? 꽃은 시들고 유리는 깨지고 인간은 죽게 마련, 즉 이들 모두 덧없는 존재라나요. 그러므로 이런 정물화를 보시거들랑, 사진 뺨치는 그림솜씨에만 감탄마시고, 우리 한갓된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그날을 생각해 달래요. 




스바냐라는 예언자는 무서운 말을 했더군요. “그날은 신의 분노가 터지는 날, …나팔 소리 울리며 함성이 터지는 날이다. …신의 분노가 타오르는 날, 온 세상은 활활 타버리리라.” 이 끔찍한 상상은 훗날 <레퀴엠>의 가사가 됐지요. 모차르트의 <디에스 이레(dies irae)>는 천둥번개와 같은 아찔한 가락으로 세계의 종말을 그려냈어요. “진노의 날, 바로 그날, 세상이 재가 되어 사라질 그날.” 베르디는 귀를 찢는 금관 합주에 천사들의 나팔 소리 <투바 미룸(tuba mirum)>을 담았고요. “나팔은 놀라운 소리를 흩뿌리며….” 




에라스뮈스는 “인간은 물거품(호모 불라, homo bulla)”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소개합니다. “인생살이보다 덧없는 것도 없고, 그보다 공허한 것도 없다.” 미켈란젤로는 벽화 <최후의 심판> 한복판에 세상 끝나는 날 나팔 부는 천사들을 그려 넣었는데요, 그들의 나팔 주둥이에서 비눗방울이 나오도록 바꾸어 봤습니다. 라틴어 ‘불라(bulla)’는 물거품이라는 뜻도 있고, 비눗방울이라는 뜻도 있으니까요. 한편 그림 왼쪽 아래 비눗방울을 부는 꼬마는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에서 데려온 친구이지요. 유리병에 담긴 꽃과 비눗방울, 깃털 등이 바니타스 정물의 전형적 도상입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풀과 나뭇잎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을 지으면서, 전통적인 레퀴엠 구성을 따르지 않고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에서 직접 가사를 추렸어요. 두 번째 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그러나 인생이 헛되기만 할까요? 내 생명이 다하더라도, 나와 같은 뜻을 계속 이어나갈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삶은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이렇게 읊었죠. “인간의 세대란 나뭇잎과도 같아, 바람에 한 세대의 잎이 지더라도, 봄이 오면 새로운 세대가 나무에 움트듯이.” 



5월.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이 글을 씁니다. “5월은 한국에만 있지 않다…. 1980년 5월이 광주 것이라면, 1984년 5월은 필리핀 몫이다. 그리고 1990년 랑군, 1992년 방콕, 1998년 자카르타처럼 아시아는 몫몫이 5월을 불렀다”(정문태). 5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렇게 끝나죠.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30년 전 도청을 사수하던 젊은 넋들은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부엉이 바위에 올라 고향 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그이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by 김태 | 2010/05/23 03:21 | 고전어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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